어느푸른저녁

시월의 시

시월의숲 2022. 10. 28. 22:21

 

두개골과 상처, 거기에 부딪쳐

서른다섯 개의 종이 노래한다.

그리고 내일은 눈먼 우리에 갇혀 울고,

공포도 외따로 앉아 광란하리라.

망치 불에 사슬이 끊기기까지는

사랑이 어둠을 터놓기까지는,

 

- 딜런 토머스, 「생일에 부치는 시」 중에서

 

 

*

내게 '시월의 시'가 있었네.

 

우연히 책장을 보다가 무심히 꽂혀 있는 이 시집을 발견했다. 아마도 본가에 갔다가 가져온 것 같은데, 내가 산 것도 아니고, 내 가족 중 누군가 샀을 리도 없으니, 이 시집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시집을, 고대의 비밀 서적을 다루듯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대체로 장시로 이루어진 시집을 좀 더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겠지만, '시월의 시'라는 제목만으로도 나는 이 시집이 특별하게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그것은 마치 나를 위해 쓰이고 나에게만 바쳐진 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생일에 부치는 시」라니. 시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한 것이다!

 

제임스 설터는 『가벼운 나날』이라는 소설에서 '우리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우연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썼지만, 이승우는 『지상의 노래』라는 소설에서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라고 썼다. 그 말들을 합치면 이렇게 될까.

 

'우리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우연이지만,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시월을 사는 동안 우리는 시월의 자장 안에서, 시월과 공명하며, 시월의 숨결을 느끼며, 시월과 시월을 둘러싼 것들 속에서 산다. 시월은 또 다른 시월을 부르고, 그 부름은 우연한 듯하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알 수 없는 나의 욕망이 또 다른 무언가를 부르듯, 우리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나와 같은, 동질의, 같은 영혼의 무언가를 부른다. 내가 '시월의 시'를 가지게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