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처절한 잠

시월의숲 2022. 11. 6. 17:42

어제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제법 유명한 산을 넘어왔는데, 단풍이 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 이외에도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로 인해 도로는 정체되었는데, 그 도로 위에서 나는 갑작스레 멀미가 날 뻔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잠이 모자라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잠을 자야 한다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잠들고 싶었으나(나는 멀미가 나면 자는 습관이 있다), 운전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잠들 수 없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멀미와 또한 갑작스러운 잠의 습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잠, 잠을 자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자는 모습이 얼마나 처절해 보이는지 아니?"

 

나는 당연히 내가 자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그게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되질 않았다. 

 

"처절해 보인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잠을 자야 한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진 그런 잠이랄까. 내가 보기에 너는 평소 늦게 자는 버릇이 있어서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하는 일이 남들보다 더 힘들지. 늦기 자기 때문에 더 깊이 자야 한다는 무의식이 네 잠에 작용하기 때문에 처절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버지가 말한 처절한 잠이라는 건, 더 깊은 잠을 원하는 내 무의식의 발로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더 '많은' 잠을 원하지만 일상이라는 끈에 사로잡힌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늦게 자게 되는 그런 악순환 때문에 나는 늘 짧지만 '깊은' 잠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짧지만 깊은 잠이 나를 구원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절한 잠이 어디 나 혼자만의 문제였던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처절한 잠이 있지 않은가. 나는 다만, 각자의 처절한 잠이 부디 조금이라도 덜 처절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가하고 있던 힘을 빼고,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나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