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사로잡힌 자와 사로잡는 자

시월의숲 2022. 11. 30. 23:12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표현은 누가 가장 먼저 사용했을까. 뛰고 있는 심장, 살아 있는 것을 사로잡았을 때와 그렇게 사로잡혔을 때의 감정을 잘 아는 자인 그들은 사냥꾼이었을까. 그들이 따뜻한 새끼 사슴이나 토끼를 사로잡듯이. 그들은 희생물의 눈동자 속에 자기 자신을 최초로 이입시킨 자. 어디에도 출구가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여 차라리 달콤하기까지 한 절대절망의 상태를 자신 안에서 상상으로 그려 보인 자. 그것을 표현이라는 방식으로 재현해낸 자들. 그렇듯 그것은 어쩌면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사로잡는 자들에 의해서 탄생했으리라. 이미 사로잡힌 자들에게는 사실상 노래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므로.(84~85쪽, 배수아, 「북역」 중에서(『올빼미의 없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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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자와 사로잡는 자'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배수아의 책을 펼쳐 든다.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그 책에 시선이 머물렀고, 그것을 펼쳐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펼쳐진 페이지를 읽는다. 마치 '눈꺼풀이 열리는 바로 그 순간, 어떤 우연의 의도에 의해 내 손 안에서 펼쳐져 있는 것이 분명한 그런 페이지의 구절들을' 읽듯이. 그 구절들은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읽는 듯, 나는 그것에 사로잡히고, 그것은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그것을 읽는동안 나는 내게 '사실상 노래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