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말하는 5·18의 기억과 ‘사자왕 형제의 모험’
지난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7)이 지난 2월 3일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르웨이 문학의 집’에서 열린 문학행사에서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을 말했다. 한강은 특히 아동문학으로서 죽음을 진지하게 다룬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5·18과의 관련성을 이야기했다.
한강은 어릴 적 읽었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통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이 자신의 내면에서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한강은 열살이던 그 여름을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자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강연 전문.
여름의 소년들에게
1.
오랫동안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놀라는 때가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은 시기가 그런 이상한 혼돈을 주었다. 이 책을 1980년에 읽었다고 최근까지 굳게 믿어 왔는데, 이 강연 원고를 쓰기 위해 개정판을 사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1983년이었다는 것을. 나의 기억이 틀렸다는 게 믿기지 않아 번역자의 서문까지 읽고 나서야 내 착각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번역자 김경희는 1982년 유학생 신분으로 스톡홀름에 머물던 중 당시 일흔네 살이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좋아하던 작가를 처음 만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번역자를 린드그렌은 밝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김경희는 이렇게 그 순간을 묘사한다.
나를 린드그렌 할머니는 마치 친손녀처럼 안아 주었습니다. 겁에 질려 뛰어든 칼을 푸근히 감싸 안던 마티아스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린드그렌 할머니는 맑고 다정한 눈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꽤나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유학생에게 웬일인지 아주 가깝고도 낯익은 느낌이 드네요. 그 나라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줘요.”
두 사람이 긴 대화를 나눈 뒤 김경희가 시내 공원 모퉁이의 그 아파트를 나온 것은 저녁 7시였다. 그들의 이 만남은 1982년 1월에 이루어졌고 이듬해 7월 20일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바로 그 여름이었다. 1980년이 아니라 1983년의 여름. 아홉 살이 아니라 열두 살의 여름. 비록 연도에는 혼동이 있었지만, 그 계절의 감각만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오후에 이 책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수유리 언덕배기 집의 조그만 내 방에서, 서늘한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세가 불편하게 느껴지면 일어나 앉았다가, 땀이 흐를 만큼 더워지면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가며,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읽어 갔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의문은 이것들이었다. 왜 나는 그해가 1980년이었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을까? 1980년과 1983년의 여름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그것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열정으로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을까?
나는 1970년 11월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내가 아홉 살이던 19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는데, 문학 교사이자 젊은 소설가였던 아버지가 수도에서 글만 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직장을 그만둔 것이 계기였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 검푸른 기와를 올리고 문과 창문에는 유리 대신 하얀 종이가 발라진 정든 한옥을 떠나, 서울 외곽의 수유리 언덕에 있는 양옥집으로 옮겨 갔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삶에 차츰 적응해 가던 5월 17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 전해인 1979년 10월, 18년 동안의 군부 독재를 이끌었던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린 그 시기를 틈타 또 한 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마침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사소하고 다소 즉흥적인 이유로 나의 가족이 떠나온 도시, 내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바로 그곳, 그때까지 그저 작고 평범한 교육 도시였을 뿐인 그곳에서 계엄에 불복종하는 항쟁이 일어난 것은 그다음 날인 5월 18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오후 1시, 수많은 시위 군중들이 모인 도청 앞 광장에서 군대는 집단 발포를 했고, 이후 생존을 위해 시민들이 무장하며 ‘광주 공동체’가 태어났다. 짧고 평화로웠던 시민 자치가 이루어지던 도청으로,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되돌아온 것은 5월 27일 새벽이었다.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폭동이자 내란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광주에 친지와 친척, 친구 들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 일의 의미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학살이자 항쟁이었던 그 열흘의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총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시장에서 음식을 나누고, 무고하게 살해된 자들을 위한 장례를 날마다 함께 치르며 버텼던 절대 공동체. 어른들은 우리 남매들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 돼.’ 그렇게 그 일은 나에게 영영 숨겨야 할지도 모를 무거운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내가 문득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곧 이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이 년이 흐른 1982년, 아버지가 광주에서 사진첩 한 권을 가져왔다. 증언을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만들어 유통시켰던 책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나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8~99면)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서울의 여름, 이상한 열정으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있는 열두 살의 내가 있다.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병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텡일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울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예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세계, 낭기열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그 후 삼십여 년이 흘러, 오슬로로의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다시 완독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왜 연도를 착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1980년 아홉 살의 내가 문득 생각했던, 그 여름을 이미 건너지 못했으므로 그 가을로도 영영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된 그 도시의 소년들의 넋이, 그로부터 삼 년 뒤 읽은 이 책에서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소년들에게로 연결되어 내 몸속 어딘가에 새겨졌다는 것을.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2.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먼저 이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고 싶었다. 촛불의 불꽃의 중심을 통과하여, 삼십여 년을 건너 우리에게 오는 넋들의 걸음걸이를 생각했다. 그 불가능한 재생을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케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그곳에서 죽어 여름으로 건너오지 못한 소년 동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만 애도하고 온 힘을 다해 존엄에까지 가자고 결심은 했지만, 『소년이 온다』를 써 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 흔들리곤 했다. 4장 ‘쇠와 피’ 같은 경우에는 내가 흔들리며 회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소년에게 매달렸다. 그가 나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에게 끌려가듯 가까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폭력보다 먼저, 인간의 참혹보다 먼저, 6장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에 이 대목을 썼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212~13면)
3.
고백하자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소년들을 거의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 한 권이라는 사실 외에는 실상 많은 것이 희미했다. 그러니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이어 읽다가, 생전의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의 뉴스들에 유난히 민감했으며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 나는 조용히 짐작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그녀의 고통이 이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배음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의 내가 비밀로서 품고 있었던 어렴풋한 사랑과 고통이,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그녀의 사랑과 고통에 잠시 맞닿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때로 우리가 만남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고. 그 경험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우리들의 심장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였던 눈에 뜨겁게 새겨지기도 하는 것이리라고.
허락된다면, 린드그렌의 이 아름다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우리는 시냇가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텡일이라든가 그 밖의 끔찍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침나절이었습니다. 햇살은 맑고 따스했습니다. 어찌나 조용한지 들리는 거라고는 약간씩 거품을 일으키며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하늘 군데군데 흩어진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요나탄 형이 텡일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
“스코르판, 잠시 동안 너 혼자 기사의 농장에 남아 있어야겠어. 나는 들장미 골짜기에 다녀와야 하니까.”
요나탄 형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 혼자는 단 일 분도 기사의 농장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형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만일 형이 텡일의 소굴로 가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요나탄 형이 아주 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습니다.
“스코르판,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야. 나는 모든 불행이나 위험으로부터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싶어. 하지만 이번엔 너를 돌볼 수가 없거든. 다른 일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하니까. 그런데 어떻게 너를 데려가니? 이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나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농장에 남아 있으라는 거야? 형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면서, 나보고 마냥 기다리기나 하란 말이지?”
나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습니다.
(…)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해. 나는 꼭 돌아올 거야.”
형은 그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
더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요나탄 형도 내 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친절한 형은 새로 구운 버터 빵에다 꿀을 발라 주었습니다. 또 신기한 옛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내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텡일이라는 악당만 자꾸 생각났습니다. 모든 괴물과 악당 중에서도 텡일이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벽난로의 불길도 잦아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문간에 서서 요나탄 형이 말을 타고 안개 속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벚나무 골짜기는 온통 새벽안개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형이 점점 멀어져,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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