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세스 노터봄, 《유목민 호텔》, 뮤진트리, 2019.

시월의숲 2023. 2. 19. 00:12

평생 한 방에 유폐되어 있다 해도, 인간은 흘러가는 해시계에 쓰인 글귀대로 한 시간 한 시간 흘러갈 때마다 상처를 입으며 기나긴 세월을 통과해 최후의 시각이 우리 죽음을 선포할 때까지 여행하는 형벌을 받은 죄수다. 그러나 이 지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들의 연속에 불과하다. 우리의 지리는 우리가 두 발로 밟고 서는 찰나에만 존재한다.(9쪽, 알베르토 망구엘의 서문)

 

 

*

 

 

"존재의 근원은 움직임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부동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 존재가 움직일 수 없다면 그 원천인 무無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정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도, 또 피안의 세계에서도."(15쪽, 이븐 알 아라비, '여행의 서' 중에서)

 

 

*

 

 

쉼 없이 여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어딘가에 있다. 이 말은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되므로 당신은 늘 부재중이며, 다른 사람들, 친구들에게도 그렇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으로 보면 당신은 '다른 어딘가'에 있기에 어딘가에는 '부재중'이지만, 또한 어딘가에는 늘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당신 자신에게 말이다.(17쪽)

 

 

*

 

 

여행은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하는 무엇이다. 여행이란 혼자인 동안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역설이 있으니, 우리는 타인이 관할하는 세계를 홀로 여행하는 것이다.(19쪽)

 

 

*

 

 

어쩌면 진정한 여행자는 늘 폭풍의 눈 안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폭풍은 이 세상이고, 폭풍의 눈이야말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수단이다.(20쪽)

 

 

*

 

 

"당신은 어떤 집을 보자마자 이곳이야말로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이라고 말하지만, 한 번 더 길 위에 있기 위해 다시 떠나기 전까지는 결코 그 집에 당도하지 못한다."(21쪽, 이븐 알 아라비의 말)

 

 

*

 

 

영원이란, 다들 아는 것처럼, 우리가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내 머리로는 그게 가장 가까운 것이 1000이라는 숫자쯤 되는데, 필시 0 세 개의 둥근 공백 때문일 테다. 천 년이 넘도록 존재한 도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영원이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약간 쭈뼛거리며 돌아다니고 층층이 포개진 과거 속에서 길을 잃는 까닭이 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은 동시에 현재에 속해있다.(24쪽)

 

 

*

 

 

 

얼마간 '존재하지 않기'로 있다는 건 사뭇 매력적인 일이다.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나라에서, 피곤에 지친 신사인 양 택시에 앉아있는 일은 마치 역할극을 하는 것 같다.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연극에 끼어들었지만, 아직 대사를 알지 못한다.(52쪽)

 

 

*

 

 

무슨 일이 일어난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그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멀어졌다. 나는 그들의 집을 볼 수 있어도 그들은 내 집을 보지 못한다.(80쪽)

 

 

*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늘 그렇듯이 너무 많고, 그것이 언제나 문제다. 그러니, 단지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이란 잔인한 감옥이다. 연극 무대에서나 인간은 이런 유폐 신세에서 벗어날 모양이다.(80~81쪽)

 

 

*

 

 

어떤 도시들은 제 의무에 충실하다. 그 도시들은 여행자가 품고 있는 그 도시의 이미지를 차려놓고 그에게 대접한다.(90쪽)

 

 

*

 

 

너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거야, 라고 그의 친구가 말했는데, 딱 그랬다. 자신을 소거하기란 어려웠고, 뭔가를 보고 싶어 하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는 예전에 보았던 것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92쪽)

 

 

*

 

 

그가 생각하는 인류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비가시적 목표를 향해 가는 돌연변이들의 집합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동시에 그리로 향해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떤 이는 엉뚱하게도 아직 봉건주의의 중세시대에 살고 있고, 반면에 다른 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화성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그 두 경우가 뒤섞인 매우 폭발적인 혼종이 골치였다. 남의 손아귀에 있는 자가 쓰는 도구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적을 끌어들여 함께 자살하는 테러리스트들.(104쪽)

 

 

*

 

 

그는 이제 그 도시를 더 잘 알게 되었을까? 그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떠나야 할 때라고 마음먹는다. 어디로? 남쪽으로, 그날 아침 그에게 손짓하던 철새들이 있는 쪽으로. 또 다른 보헤미아로, 산으로, 유럽의 분수령으로. 그곳은 언어·국가·강이 사방으로 흘러가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대륙의 일부다. 잃어버린 왕국, 되찾은 영토, 서로 부대끼는 언어, 충돌하는 시스템이 자아내는 혼돈과 함께, 골짜기와 산백이 대립하고 오래되고 갈기갈기 찢어진 중간 왕국인 곳. 그는 영국 정원의 무성한 풀밭을 다시 가로지르며, 가을을 마지막으로 불태우고 있는 나무들을 구경하고, 고니에게 먹이를 주고, 잔디밭에 누워 알프스를 향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아니, 그는 이 도시를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이 지금 그를 부르고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그 부름, 보헤미안의 은밀한 단가를 그는 거역하지 못한다.(120~121쪽)

 

 

*

 

 

바다는 최면에 걸린 듯 영원한 동작으로, 바로 이 암석에 거듭하여 자신을 때려대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다. 보르헤스는, 영원성을 상상하려거든 대리석 돌덩이를 날개로 어루만지는 천사를 떠올려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모두 다 사라질 때까지.(130~131쪽)

 

 

*

 

 

"자연은 도통 우리를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생각해낸 그 모든 현란한 은유는 비인간적인 실제와 의사소통을 해보겠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선 안됩니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의미의 원천입니다. 적어도 우주의 이 작은 해변에서는 그렇지요. 우리가 굳이 돌멩이 하나하나에서, 모래알 하나하나에서 찾아내려 고집하는 비문들은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광대하고 너무 다성적이고 현실과 공존하려는 기획으로 내쳐 달리다 뿔뿔이 흩어져버린 작품을 쓰고 있어서, 그 흩어진 구절들과 마주치더라도 우리 것인지 알아보지 못합니다."(142~143쪽)

 

 

*

 

 

호텔 이야기는 마땅히 호텔에서만 쓸 수 있다. 무릇 호텔이란 닫힌 세계, 경계가 있는 영토, 봉쇄 구역, 사람들이 자진해서 들어가는 장소다. 숙박객은 오다가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수도회의 회원이다. 그들이 묵는 객실은 남루하든지 호화롭든지 간에 그들의 독방이다. 방문을 닫고 문의 '안쪽'에 있으면, 속세를 떠난 셈이다.(144쪽)

 

 

*

 

 

내가 지금 묵고 있는 방은 가장 연한 그린란드 녹색으로 꾸며져 있고 호수는 523이다. 가끔 나는 평생 묵었던 호텔의 객실 번호를 모두 더한 숫자에 내 운명과 성격에 대한 암호화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방 번호를 기록해두지 않았으니, 실제 존재할 그 비의적인 숫자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145쪽)

 

 

*

 

 

당신은 거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없다. 그것이 내가 모로코를 두 번째로 여행한 방식이다.(163쪽)

 

 

*

 

 

시장에서 내린다. 시장은 나머지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자 빵집·구리세공점·찻집·환전상·정육점·식료품점이 한 지붕 아래에 있는 우주다. 나는 항상 이런 장소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곤 하는데, 어째서 그런지는 한 번도 따져보지 않았다. 우리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생각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에게는 혼돈과 미로인 것이 실제 그 안은 단순하고 평범한 질서로 되어 있으니, 나는 그 질서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해답이라는 객관적 사실보다는 수수께끼라는 겉모양새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 터라, 구리세공점 옆의 계단에 무척이나 흡족한 기분으로 앉아 땡그랑땡그랑 소리를 들으면서, 구리에 어떻게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지는지 구경하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을 바라본다. 제조자가 아직은 자신의 제품에서 소외되지 않은 모습인데, 그 점 또한 물론 중요하다. 작가가 글을 쓰고 농부가 씨를 뿌리듯이 저마다 자기가 누구인지에 따른 일을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세상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사람에게 지배되어, 대장장이는 대장장이이고, 식료품상은 식료품상이며, 정원사는 정원사, 죽음은 죽음이다.(210쪽)

 

 

*

 

 

당신이 어디에 서 있든지 간에 무덤은 말없이 당신을 내려다본다. 마치 어떤 그림은, 그림 속 눈이 전시실 안에서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쳐다보는 것과 비슷하다.(234쪽)

 

 

*

 

 

말도 안 되는 것들과 말이 되는 것들의 날들이 밝아온다.(316쪽)

 

 

*

 

 

아프리카의 오지, 가시적 성과라고는 언제나 미미할 어떤 나라에서 가난하고 고독한 삶을 보내겠다며 누군가를 여기까지 오게끔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337쪽)

 

 

*

 

 

진흙 바닥과, 이런저런 동물들이 부스럭대는 소리와, 내가 어떻게 바깥으로 나가서 하늘의 칠흑 같은 어둠과 미동도 하지 않는 뭇 별들의 아름다움을 향해 갔는지 기억한다. 그 밤은 내가 이제는 읽어낼 수 없는 한 단어로 내 안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지금 나의 것이라고 부르는 삶, 현상적 세계에서 글을 쓰면서 그리고 묘사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읽어내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말을 적어야만 하는가?(377~3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