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아, 인생이여'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어로 '아이고, 인생아'라고 한다. 불쌍해서, 죽일 수도 없을 만큼 불쌍해서.(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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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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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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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나는 인생이다.(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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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어처구니 없는 확률(우연)의 결과 죽었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숨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 마는 역설.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인간이 오히려 신 앞에 무릎을 꿇기를 선택하는 아이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잃은 부모가 갑자기 독실한 신앙인이 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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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서는 '슬픔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혼자 공부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런 벽에 부딪힌다. 예컨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뿐이다,라는 벽.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지금 알 수 있는 것들뿐이어서, 내가 아는 슬픔은 내가 느낀 슬픔뿐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부딪힌 그 불가능의 자리에서 진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다.(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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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라는 말은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은 단지 그 사람이 나를 떠난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기에. 그리고 "지옥"이 창조되기 위해서도 단테가 상상한 총 아홉 개의 구역 따위는 필요 없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뜨기만 하면 지금 여기가 지옥이므로.(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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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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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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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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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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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도 다른 원인으로 한번 더 죽어야 하는 고초를 겪는 곳이 우리가 사는 여기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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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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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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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평상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보다 덜 고귀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유사시에' 돈도 힘도 없는 이들의 사랑이 돈 많고 힘있는 이들의 사랑을 지키는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리하여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이런 것도 애국이라면, 애국자가 될 용의가 있다.(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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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깊이 마시지 않을 거라면 피에리아의 샘물을 맛보지 말라." 알렉산더 포프의 장시 「비평론」의 215~216행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위험한 것은 그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 이어지는 대목이 이렇다. "얕은 한 모금은 뇌를 취하게 만들지만, 많이 마시면 다시 명철해지리라."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이젠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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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문학은 비관적인데 어째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 하고. 시인의 답은 이렇다. 카프카의 문학은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이라는 것. 산불이 났을 때 불이 진행되는 방향의 맞은편에 마주 놓는 불이 맞불이고, 두 불이 만나 더는 탈 것이 없어 불이 꺼지도록 하는 게 맞불 작전이다.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임의의 다른 절망을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이라는 것. 그렇구나. 나를 태우는 불을 끄기 위해 나는 타오르는 책들을 뒤적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210~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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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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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일 같은 것이리라. 죽을 때까진, 살아가는 것이다.(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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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사랑을 얻었으면 그만이다. 최승자는 언제나 살기 위해 썼지 쓰기 위해 살지 않았으니까.(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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