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3000년의 기다림

시월의숲 2023. 8. 4. 16:17

 
지니가 당신에게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슨 소원을 빌 것인가?
 
여기 삼천 년 만에 깨어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 지니가 앞에 있다. 어쩌다 지니라는 거대한 복권에 당첨된 중년의 시니컬한 여교수(틸다 스윈튼)는 소원을 빌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 그가 물러가기를 바란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지니는 그녀에게 어떻게든 소원을 빌도록 애원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마치 천일야화처럼 들려준다. 헌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다름 아닌 지니의 사랑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던 교수는 점차 그에게 동화되고, 결국 그에게 자신을 ― 오래전 그가 열렬한 사랑을 바쳤던 여성들에게 그랬듯 그렇게 ―  사랑해 달라는 소원을 빈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우화로 읽힌다. 사랑이란 원래 어느정도 마법 같은 속성이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마법으로 인한 사랑의 성취라는 것은 어쩐지 불완전해 보이지 않는가? 사랑이란 어떤 한 사람의 소원 성취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것을 아는지,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충실한 것과 구속은 엄연히 다르며, 구속이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착을 사랑이라고 오해한다. 내 깊은 사랑을 봐,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안타깝게도 모든 비극은 거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에겐 아직 소원이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소원을 그녀는 비로소 상대방을 위해서 사용한다. 마치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하듯이. 
 
제 삼자가 아니라 소원을 들어주는 자(지니)의 사랑을 원한다는 설정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란 원래 좀 슬픈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어쩐지 좀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이란 서글픈 것이 아니라 희열에 찬 슬픔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지니가 있다면 누군가의 사랑을 소원으로 빌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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