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꿈 없이 빛 없이

시월의숲 2024. 2. 24. 15:51

'너무 많이 아는 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알지 못하는 자는 너무 많이 아는 자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

 

- 이동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중에서(『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수록)

 

 

문득 책장을 훑어보다가 이동진의 두툼한 ― 어찌 보면 목침 혹은 벽돌로도 보이는 ― 영화평론집을 발견하고 꺼내 펼쳐본다(사놓고도 전혀 읽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무심히 펼쳐진 책에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읽는다. 몇 년 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가 언급한,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그 '빛'을 떠올리면서. 처음에는 그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으나, 글을 다 읽고 나서야 조금씩 떠오르던, 그 빛에 대하여. 하지만 그는 이렇게 끝맺는다. 그리고 이건 이 영화의 끝(혹은 시작)과 아주 잘 어울린다.

 

'세계에 당도한 빛은 이제 사라졌고, 관계에 동력을 불어넣었던 꿈 역시 끝났다. 하지만 육체와 영혼이 온전하게 공유되었던 기억은 아직 선연하다. 그러니 이제 이 아름다운 연인들은 꿈 없이 빛 없이, 뚜벅뚜벅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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