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김선오, 《미지를 위한 루바토》, 아침달, 2022.

시월의숲 2024. 7. 27. 23:13

시가 어떤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말.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모든 시가 진실을 향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조금 사기일 것이다. 그러나 시 쓰기의 즐거움만큼은 진실이므로 시가 조금이라도 진실에 가닿으려면 역시 즐겁게 쓰는 수밖에 없다. 시 쓰기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한 나의 삶 역시 그렇다면 약간은 진실이라고 할수도 있겠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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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명상이란 '살아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살아 있음의 좋음'을 실감하는 일이다. 마치 들리지 않는 음악과 적히지 않은 시가 들리는 음악과 적힌 시의 좋음을 강화하듯이. 몸의 존재가 없다면 몸 이전과 이후로 발생하는 좋음 역시도 없을 것이기에.(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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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낮은 텐션과 목소리로 인해 영혼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타인의 이야기에 "와하하··· 재미있다···" 혹은 "와하하··· 너무 웃겨···"같은 리액션을 하고 난 이후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면 나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은 무엇이며 없음이란 또 무엇인가······.(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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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속 얼굴은 실내보다 바깥이 어두운 시간, 내가 유리 근처에 머무를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낮이 되거나 내가 콘크리트 벽 앞으로 자리를 옮기면 반영은 소멸한다. 우리는 사차원 속 유리창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누군가에 의해 그곳으로 끌려가는 동안을, 반영으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단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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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없다는 말은 멋진 말이다. 영혼이란 원래 없는 것이므로 그 말인즉슨 부재가 부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재의 없음은 역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기에 영혼이 없다는 말은 곧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창문에 비친 나의 반영은 이곳에 내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영혼은 없지만 몸을 가진 내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듣고, 웃고, 말한다. 이러한 일들이 나는 자주 신기하다.(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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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름이라고 말할 때 여름은 잠깐 우리에게 온다. 여름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여름을 듣는 이에게로 여름이 부드럽게 이동한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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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라는 말 속에는 두 개의 계절이 들어 있다. 두 개의 옷차림이 들어 있다. 계절은 스위치를 껐다 켜듯이 바뀌지 않고 다만 그라데이션으로 이동한다. 두 개의 계절이 겹쳐지고, 두 개의 옷차림이 겹쳐지면서. 연결되는 여러 개의 시퀀스처럼.(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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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뼈와 살로 구성된 나의 몸이, 색으로 뒤덮인 하늘이, 손과 발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너는 하나의 너이게도 하고, 이전에 만났던 다른 타인이기도 하고, 익명의 대상이기도 하다. 타자들은 나로 인해 뒤섞이면서 각자의 특징을 잃고 한 사람처럼 기억될 때가 있다. 이 일을 너와 했는지, 다른 사람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곳을 너와 갔는지, 다른 사람과 갔는지 명료히 떠오르지 않는다.(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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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에게 미지란 다채로운 모호함을 포함하는 '알 수 없음'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자에게 미지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가 작품을 장악하거나 포섭하려 하지 않는 태도, 작품이 발생시키는 리듬에 몸을 맡길 줄 아는 겸허함이자 작품의 원천인 자신과 세계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루바토가 표면적으로는 연주자 개인의 감정과 해석에 따른 표현 방식이지만, 사실은 역으로 연주자의 강박을 비우고 음악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처럼.(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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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감응하는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문학적'이라는 과잉된 수사 밖에서 써나가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쓸 수 없음에 대해 쓰기, 쓸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이렇게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쓰는 일이 쓰고 말하는 일의 비루함을 잠시 덜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은근히 품으면서 말이다.(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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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이란 무엇일까. 알다시피 그것은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존재의 자율을 상실하고, 마음의 근육이 녹아내리고, 액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보이지 않는 물길따라 한없이 흘러가버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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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가장 괴로운 일 중 하나는 나의 존재와 유관하게 발생하는 고통들을 외면한 채 나의 글쓰기가, 나의 타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고는 했다.(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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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상처가 아문 곳을 '흉의 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처가 있었고, 그것이 회복되었음'을 증명하는, 상흔의 역사가 가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몸의 일부가 '흉터'라 불린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동시에 어딘지 쓸쓸하다.(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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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말자고 죽지 말자고 만날 때마다 되뇌는 나의 친구들, 그 말만 남기고 사라진 친구들, 그리고 전쟁터에 남겨진 사랑의 기억들.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 것은 그들이 금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 죽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한 개도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할 줄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밀려오는 어떤 죽음을, 터진 둑을 견디는 한 개의 돌멩이처럼 잠깐은 막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믿음으로.(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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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날이 좋았어

그날을 위해 뭘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뭔가 감당할 필요 없는 그런 날들 있잖아

갑자기 겨울 냄새가 풍겨오는 아침이라든가

길 가다 마주한 석양이 유난히 예쁜 저녁이라든가

그날을 위해 이 빠진 캐스터네츠를 들고

애쓸 필요 없는 그런(164쪽, 'K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