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4. 8. 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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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는 것이 가족들하고만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자명한 사실을 내가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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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다 남은 커피에 얼음을 넣어 물처럼 마신다. 얼음은 차갑게 만들지만 연하게도 만들어 주는 것. 독해지지 말고 연해지자. 부드럽게 차가워지도록.(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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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신작 소설을 사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본다. 한 권만 사기가 뭣해서 내가 찜해놓은 리스트에 들어가 무슨 책을 더 살까 둘러본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책들을 찜(?)해 놓았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 허영과 치부를 보는 것만 같다. 대체적으로 나는 나를 잘 견디지만, 또 다른 내가 무서울 때가 있다. 이조차 과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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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누군가 소리쳤다. "와, 이건 완전 동남아 날씨네." 나는 가보지 않은 동남아의 날씨를 떠올려보고는 '그래,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렸다. 마치 거대한 사우나 속에 들어와 있는 듯 느껴졌다. 팔을 휘저으면 수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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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배수아의 신작 소설만 배송이 지연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늘 택배를 받았는데 당연하게도 배수아의 소설은 들어 있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이 헛헛했다. 이상하지, 일찍 받더라도 일찍 읽겠다는 결심도 못하면서. 아무튼 마음이 그렇다.(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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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맹렬하고 처절하게 들린다는 건, 여름이 가고 있다는 것임을.(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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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걸어서 왔는데, 수면 내시경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간호사는 "수면 내시경을 하면 운전도 물론 하면 안 되지만, 무엇보다 보호자가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보호자라는 말이 그토록 생경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내 수면 내시경을 위해 함께 있어줄 보호자는 누구인가.(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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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K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인근의 화장터에 자리가 없어서 먼 곳으로 갔다 와야 한다고 친구는 말했다. 장례식장까지 가는 길이 막혀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오늘이 지역 축제의 개막일이었다. 길 위에서, 누군가는 장례식장으로, 누군가는 화장터로, 누군가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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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드물게 어떤 이에게서 느껴지던 순간의 이끌림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거나, 한순간 반짝하다 사라지는 것이었을 뿐.(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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