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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이들은 남자인데 여자 같다느니, 여자인데 남자 같다느니 하는 말들을 그리도 쉽게 내뱉는 것일까? 그게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듣는 상대방의 기분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오래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견주와 함께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숨길 기색이 없는 큰 목소리로 "강아지 참 못생겼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주인이 다 듣겠어요!"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예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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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동굴 안으로 끌려갔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을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사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벌판을 배회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그대로 끌려간 곳이 산속의 동굴이었다. - 정보라, 「흉터」 중에서
동굴 안으로 끌려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 동굴은 부디 따뜻하기를. 사람이 살만한 동굴이기를. 작지만 나만의 벽화를 남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익숙한 사람들이 될 때까지 '나'를 잃지 않고 잘 버틸 수 있기를. 지금으로서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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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나는 시장에 있었다. 반찬을 팔고 있는 가게 앞에 서 있었는데, 간장과 식초로 절인 고춧잎 비슷한 채소 장아찌를 사서 그 자리에서 꺼내 먹었다. 꿈에서도 맛있다는 게 느껴져서 자칫 꿈을 깰 뻔했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적당히 아삭한 그 맛. 꿈에서 깬 후에도 한동안 그 맛이 생각났다.(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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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신줄 부여잡고 있는 게 힘든 하루였다. 사무실의 에어컨은 전혀 시원하지 않았고, 그것과는 별개로 낯설고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의 그 어색한 긴장감 때문에 거의 질식할 지경이었다. 오래전에 느꼈던, 맨땅에 헤딩하던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줄이야.(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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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무릎에 동전 두 개 크기만 한 시퍼런 멍이 든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부딪혔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는 말일까.(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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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 할수록,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 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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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으로 비빔면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상추와 골뱅이, 수박을 넣어 먹었다. 나쁘지 않네. 그나저나 며칠 전에 수박 한 통을 샀는데, 역시 혼자 다 먹기에는 너무 많구나.(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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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지나가다가 만개한 능소화를 보았다. 장미도 지고 이젠 녹음만이 짙어지겠지 싶었는데, 녹색들 속에서 마치 불을 켜놓은 듯 주황빛의 환한 꽃이라니.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