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이란 무엇일까. 알다시피 그것은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존재의 자율을 상실하고, 마음의 근육이 녹아내리고, 액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보이지 않는 물길 따라 한없이 흘러가버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김선오, 『미지를 위한 루바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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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선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카우프만'이라고 하는 잡지(?) 혹은 쇼핑몰(?)(사이트의 정체성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에 실린 그의 인터뷰에서였다. '나는 사치스럽게 잔다'라는 제목의 인터뷰였는데, 그전까지도 나는 김선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랬으므로 당연히 그가 시인인지도 알지 못했으며,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짧다면 짧은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과 언어가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그가 썼다는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데 나도 참 이상하지. 시로 데뷔를 한 시인의 인터뷰를 읽었으면서 나는 그의 시집이 아닌 산문집을 두 권 샀다. 그중 한 권이 이번에 읽은 『미지를 위한 루바토』였고.
내가 그의 글에 이끌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무엇이 나를 매혹시킨 것일까. 나는 그의 산문집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읽는 동안 무장해제된 상태로 빠져들어가듯 읽었지만 도무지 내가 그토록 빠져드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거짓말을 좀 보태서 말한다면, 그가 이 책에도 썼듯이, 나는 얼마간 '불능의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존재의 자율을 상실하고, 마음의 근육이 녹아내리고, 액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보이지 않는 물길 따라 한없이 흘러가버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매혹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가 이 책에서 호명하고 있는 이름들 ― 제발트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한강, 장국영 ― 을 나 역시 흠모하고 있었다는 것. 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내가 평소 좋아하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도 역시 좋아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들을 때의 미묘한 흔들림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 비단 이름들만이 아니었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 미지의 즉흥성을 사랑하는 방식과 시를 대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조용히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나는 서서히 그의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그 '미지를 위한 루바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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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감응하는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문학적'이라는 과잉된 수사 밖에서 써나가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쓸 수 없음에 대해 쓰기, 쓸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이렇게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쓰는 일이 쓰고 말하는 일의 비루함을 잠시 덜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은근히 품으면서 말이다.(김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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