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시월의숲 2024. 5. 26. 23:15



정말이지 나는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왜 그다지도 어려웠던가?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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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저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그 문장이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로, 당연한 문제로 내게 새겨졌다.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을 사는 일, 그러니까 진정한 '나'로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시 어렸던 나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로 살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아니, 온몸으로 직감했다. 저 문장은 내 생의 화두가 될 것임을. 내 온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 될 것임을.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나는 저 문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소수자의 삶은(혹은 사랑은) 저 문장보다 더욱 혹독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삶이란 이중의 고통, 이중의 슬픔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저 말은 소위 '일반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을.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는 것대로 살기도 힘든데,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삶에 더하여 '소수자'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사회적 혐오에 맞서서 살아가야만 하니 삶이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소설은 암울하지 않다. 자신의 신세한탄으로 생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다만 씁쓸하고 슬픈 뒷맛을 남길 뿐(그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은 성소수자인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은 부수적인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엄마에게 소개해 줄 마음이 생겼다는 것, 얼굴을 만지고 싶고, 살을 맞대고 싶고, 어깨동무를 한 채 빗속을 뛰어가고 싶은, 누군가의 전부를 가진 것처럼, 그리하여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지던 그 감정이다. 그것은 이성 간의 사랑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천만에!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평등하다. 사랑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선이 불평등할 뿐.
 
수많은 정념의 밤 속에서 우리가 사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했으나 사랑이 떠난 뒤에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모순 속에 있는 것일까. 그 불가능성과 후회 속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대도시의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만 씁쓸하고 슬픈 뒷맛만이 느껴질 뿐. 아, 반가운 마음도 있다. 한국 소설이 퀴어라는 소재를 이렇듯 가볍고 유쾌하게 담아낼 수 있는 수준에까지 다다랐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 가벼움이란 것이 애써 슬픔을 참고 있는 자의 안간힘처럼 느껴져서 매 순간 코끝이 시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