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늘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한다. 임윤찬이나 이세돌을 보며,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둑을 배웠는데 그 정도도 못 치겠니,라는 등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그렇게 쉽게,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어느 정도는 허풍이겠지만)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두 손가락으로 '학교종' 치든, 운동을 위해 5분을 걷든,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그게 먼저라고. 나는 한강이나 임윤찬, 혹은 이세돌이 될 수 없고, 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그저 책이 있으면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싶으면 쓰고, 길이 보이면 걷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보러 가면 된다고.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중에'는 없다고. 그러니 아버지의 그 말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내게 내린 당신만의 처방이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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