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4. 11. 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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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왜 이리 힘든 것일까?(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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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풍경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서 아니라, 그저 풍경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런 존재감, 거리감이 아닐는지.(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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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노란 단풍인가 싶었다. 잎이 우수수 떨어진 나뭇가지에 노란 등처럼 달려 있는 그것이.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단풍이 아니라 아주 작은 모과였다. 마치 알전구를 켜놓은 듯, 파란 하늘과 샛노란 모과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모과가 모과임을 숨길 수 없는 그 향기!(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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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노랑나비를 두 번이나 보았다. 노랗고 가녀린 그 나비의 이름이 뭘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나비목 흰나비과의 곤충'이며 이름이 그냥 '노랑나비'란다. 마치 빨간 머리색을 가진 아이의 이름을 빨강머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암튼 노란색의 노랑나비를 두 번이나 마주치다니.(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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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이지 끔찍하다 할밖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목소리와 똑같았던 것이다. 자꾸 들으니 익숙해지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 설명하기 힘든 - 특유의 음색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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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자극적인 걸 먹고 싶었다. 저녁으로 만두 세 개는 너무 적었나 보다. 싱크대 수납장에서 라면을 찾았는데 유통기한이 두 달 가까이 지났다. 학창 시절에는 너무 자주 먹어서 탈이었는데.(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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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함이 반복된다면 그건 멍청함이 아닐지도 몰라. 언제나 그렇듯 야만의 시대에. 참으로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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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랩소디 인 블루》와 관련된 트윗을 보고 문득 내가 가지지 못한 그의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일단 《랩소디 인 블루》가 없고, 《동물원 킨트》, 《이바나》, 《심야통신》, 《붉은 손 클럽》, 《철수》 정도가 떠오르는데, 아마 더 있을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읽지 않은 것은 아닌데(물론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못 읽었던 책은 《심야통신》과 《붉은 손 클럽》 정도인 것 같다. 맨 처음 읽은 소설은 《랩소디 인 블루》였고. 헌대, 왜 그 책들을 가지지 못했을까? 생각건대, 그 책들은 작가의 초기작들이고, 당시 나는 학생 신분으로 (무척 당연하게도) 가난했으므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만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책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살 수 있었던 시기는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부터였으니.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때가 언제던가!(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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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서글픈 일 하나. 야근을 하고 지친 상태로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데 주차할 곳 없어 몇 번이고 아파트 안을 빙빙 돌 때. 오늘은 춥기까지 하고. 쏟아지는 일은 진도가 나가지 않아 머리가 아프고. 집에 와도 멍하니 있는 시간(충전하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암담하고. 내일은 또 오늘처럼 정신없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일어나기 싫어지고. 푸념은 늘어가고. 그나마 투덜거릴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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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다시금 자각한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로구나.(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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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에 대해서 대체로 관심이 없지만, 유독 어떤 사람들에게만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그가 기쁠 때가 아니라 기분이 나쁠 때, 화가 나 있거나 슬픈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그렇다. 이건 그 사람에 내게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나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의 전이가 더 쉽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신경을 끄면 되겠지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쉬운 물건인가 말이다.(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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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저기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나는 일을 해야 하고, 소속이라는 것이 내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어떤 일을 당하고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상처받는 일이란.(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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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읽히지 않을 때는 책장 앞에 가만히 서서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의 제목을 무심히 바라본다. 저 책은 왜 내 책장에 꽂혀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면서.(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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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의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사라지는가.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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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비가 세차게 오는 추운 날씨에 깊은 산속에서 작은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들의 영상을 자주 찾아본다. 외부의 환경은 암담하고 춥지만 텐트 속 작은 난로와 침낭의 온기로 밤을 지내는 인간이라는 존재. 나는 지금 무언가 절실한 걸까 아님 절실함이 필요한 걸까.(202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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