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4. 10. 17. 00:05

*

조금만 신경(스트레스)을 써도 몸이 먼저 반응을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20240930)

 

 

*

문득 윤성희의 단편, 「그 남자의 책 198쪽」이 떠올랐다. '공원에서 잡동사니 물건을 파는 사람'이 나왔지 아마. 그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모든 것이 다 희미하지만, 어째서 이 사진을 보고 바로 그 소설을 떠올렸을까. 기억이란 참 알 수 없다.(20240930)

 

 

*

누군가 내게 "너도 사랑을 하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20241001)

 

 

*

말은 어떤 힘이 있을까. 나를 걱정하는 말들이 내게 어떤 소용이 있을까. 나는 늘 말이 가진 힘에 대해서 생각했다. 말은 우리를 구속하고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왜 어떤 말들은 전혀 다가오지 않는가. 왜 느끼지 못하는가.(20241001)

 

 

*

시월의 서늘한 바람 속에는,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성분이 있는 것 같다. 저수지의 갈대숲과 버드나무를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접었던 소매를 내리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근다.(20241001)

 

 

*

요즘은 블로그에 자동으로 댓글도 달아주는 AI가 있는 건가? 글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댓글이라니. 그건 백 퍼센트 본인 블로그에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면 온갖 유용한 정보로 가득한 듯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ChatGPT에서 가져온 듯한 글로 가득한.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가득하다. 그런데 그 껍데기도 진실이 아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광고(돈) 밖에 없는가? 그러니까 광고가 진실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광고라는 최소한의 사실 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20241001)

 

 

*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일은 일어났고, 나는 받아들였으니까. 당신의 변명을 굳이 듣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최대 당사자에게는 미리 알리는 게 예의가 아니었을까.

 

모든 일들이 상식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워라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만, 나보다 더욱 황당한 사람이 있으니 내가 느낀 감정은 우습다 할 밖에.(20241002)

 

 

*

사실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사실들 사이에 속삭임이 있다. 나를 경악시키는 건 그 속삭임이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어쩔 수 없이 배수아의 『속삭임 우묵한 정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20241002)

 

 

*

먹고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때란 과연 언제인가? 정치인들이 말하는 그런 때란 과연 존재하는 것이던가? 적어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때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20241003)

 

 

*

비 온다. 오랜만에 향을 피웠다. 향에서 피어오르는 무정형의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저녁을 먹어야겠다.(20241003)

 

 

*

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 갑작스레 짜증과 울분이 솟아오르는가. 왜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없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인연임에 틀림없다.(20241004)

 

 

*

퐁당퐁당 쉬니까 좋긴 한데, 뭔가 출근할 때 좀 더 힘든 느낌이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월요일이 세 번 있는 느낌이랄까…(20241004)

 

 

*

갑작스러운 짜증과 울분은 비단 아버지와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병원을 몇 차례 다니면서 새삼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고, 다 누리고 사는 게 왜 나만? 짜증과 울분은 어쩌면 억울함의 한 형태일지도. 그런데 누굴 향한 억울함인가? 나 자신에 대한?(20241006)

 

 

*

모든 것은 익숙함의 문제일 뿐일까?(20241006)

 

 

*

하지 않으려는 핑계를 대지 말고 하려는 핑계를 대보자. 어차피 핑계를 댈 거라면.(20241006)

 

 

*

당근라페를 해보려고 당근을 사서 채를 친 후에 소금을 뿌려 30분 정도 절였다. 냉장고에 있던 머스터드를 넣으려는 순간 유통기한을 보니 2022년이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냉장고가 잘못된 걸까, 머스터드가 잘못된 걸까(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내가 종종 배앓이를 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20241006)

 

 

*

휴일보다 휴일 전날이 더 좋은 법.(20241008)

 

 

*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일단 사람은 자기 위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누가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일까?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면? 그래서 제삼자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그 또한 인간이 아닌가?(20241009)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감격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이렇게 기쁜 날에! 다들 한강의 작품들에 대한 글로 넘쳐나는데, 유독 『검은 사슴』과 『그대의 차가운 손』 그리고 『바람이 분다, 가라』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노랑무늬영원』도 있었는데.(20241010)

 

 

*

오늘은 하루종일 머리를 식히지도 못하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하느라 끙끙거렸더니, 지금까지도 머리가 아프다. 그 와중에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감격의 여운은 가시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보고 또 보고 있다. 나는 주로 혼자인 것에 익숙하고, 그 상태를 즐기기까지 하지만, 그 기쁜 소식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내 주위에 없다는 사실이 좀 슬프구나.

 

아무렴 어떻겠니. 나는 혼자 놀기와 자문자답의 달인. 뉴스 속, 책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20241011)

 

 

*

아침, 저녁으로는 춥고, 낮엔 덥고. 노란 벼들로 가득한 들판은 한창 추수 중. 반바지와 반팔을 입은 사람들을 제법 보았다. 가을 햇살이 따가웠지만 그늘에 있으면 괜찮았다. 나뭇잎의 색도 조금씩 변해가고. 모든 것들이 점차 가을색으로 물드는 시월.(20241012)

 

 

*

오늘은 일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다. 정신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네 시가 다 되었다. 어제도 일 때문에 못한 집안일을 오늘 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하여 잠깐 잠을 자고 싶지만, 지금 자면 내일 아침에나 깰 거 같아 참고 있다. 아, 사라진 내 주말이여!(20241013)

 

 

*

한강 작가의 과거 인터뷰 영상과, 작가가 본인의 책을 낭독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 특유의 차분하면서 느릿한, 흔들리는 촛불처럼, 후 불면 꺼져버릴 것 같은 섬세한 음성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귀를 기울이게 한다.(20241013)

 

 

*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20241013)

 

 

*

여기서 나가요! 여기서 탈출하자고요! 어디로 가냐고요?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예요. 이 진절머리 나고 꽉 막힌 이곳에서!(20241015)

 

 

*

내가 사랑하는 시월을 만끽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야근이 잦고, 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책을 읽을 수 없다. 머릿속이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 무거워서 도무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말에도 쉬지 못한 탓이리라. 내게 필요한 건 긴 잠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일 테지. 생각해 보면 시월이 아니라, 매 시간, 매일, 매 월, 매 해가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시월이라는, 내겐 특별한(무엇이?) 시간의 통로에 서 있기 때문인지도.(20241015)

'입속의검은잎'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들  (0) 2024.09.29
단상들  (2) 2024.09.18
단상들  (3) 2024.09.05
단상들  (2) 2024.08.20
단상들  (3) 202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