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오전에 아버지 병원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시간이 남아 《슈퍼맨》을 보았다.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번에 나온 슈퍼맨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 나 혼자였더라면 다른 영화를 보았거나, 아니면 그냥 책이나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개봉하고 있는 영화 중에 개봉관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영화라서 그냥 별생각 없이 아버지에게 《슈퍼맨》은 어때요?라고 물어봤는데, 아버지는 흔쾌히, 그래 그거 보자,라고 하셨다. 나는 혹시나 싶어 《쥬라기 월드》는 어때요?라고 물어봤는데, 그거보다는 슈퍼맨이 좀 더 때려 부수는 영화가 아니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도통 아버지의 영화 취향을 종잡을 수 없어서 그냥 네, 하고 말았다.
어쨌든 《슈퍼맨》을 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맨의 여러 클리셰들을 끌어와서 새롭게(?) 버무려 한 상 차려주었고, 나와 아버지는 큰 실망 없이 무난하게, 익숙한 듯한 맛을 즐겼다. 지금까지 나온 슈퍼맨 영화들에 비해 조금 새로운 점이라면 크립토라는 슈퍼독이 등장한다는 것과 앞서나온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이 아닌 슈퍼맨의 새로운 동료들(그린 랜턴, 호크걸, 미스터 테라픽)이 등장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린 랜턴의 지치고 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직장 상사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 독단적인 면도 있지만 여유가 넘치는 베테랑의 든든한 이미지 말이다. 반면 슈퍼맨은 늘 그랬듯 좀 단순한 면이 있다. 하긴, 파워면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려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결국 슈퍼맨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까지 이긴 그에게 더 이상의 적은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버지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재밌긴 한데, 전에 본 슈퍼맨이 더 재밌었다고 했다. 나는 어떤 영화를 말하는 건지 궁금하여 어떤 내용이었어요? 하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왜 슈퍼맨 하고 세 명인가? 같이 싸우던 영화 말이다, 여자 한 명하고...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슈퍼맨과 같은 행성에서 온, 말하자면 슈퍼맨과 같은 종족끼리 싸우던 영화요? 했더니 아버지가 맞다! 고 했다. 그러니까 그 영화의 이름은 《맨 오브 스틸》이었던 것이다. 때려 부수는 걸로는 슈퍼맨 영화 중에 단연 으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스펙터클 그 자체인 영화. 고층건물들이 종이로 만들어진 것처럼 맥없이 부서지던 영화. 아버지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면 응당 수많은 액션과 수많은 폭격과 부서지고, 붕괴되고, 파괴되는 스펙터클의 쾌감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믿음(?)과는 달리(그런 스펙터클한 쾌감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부서지는 건물 안에, 갈라지고 무너지는 도로와 대교 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자꾸만 떠오른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슈퍼맨이라는 거대한 선이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악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희생들에 더 눈이 가는 건. 어렸을 때는 당연히 선이 악을 이길 때의 쾌감과 정당성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지,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어벤저스 시리즈나 저스티스 리그 같은 영화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리 깊이 다루지는 못한 것 같지만. 영화의 좋은 점이라면 이런저런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일 게다. 그게 비록 마블이나 디씨 같은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