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어쩔수가 없다

시월의숲 2025. 10. 19. 22:08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가 코미디 스릴러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에는 실직과 재정난, 급기야 살인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 나오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주인공의 행동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보는 우리는 그들의 기괴하고 극단적인 모습에 실소가 터지지만, 정작 그들은 누구보다 궁지에 몰려있고, 그래서 한없이 진지하다. 그래서일까?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웃음의 농도는 짙어진다.
 
영화 초반, 주인공인 유만수(이병헌 역)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우며 말한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그것은 그가 25년 동안 근무했던 제지공장에서 실직당하기 전의 말이다. 하지만 그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그가 말한 모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3개월 동안 알바를 전전하는 그를 보면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사람 같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재기를 위해 살인까지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는 이 영화가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제지 공장으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 있는 만수와 그를 둘러싸고 마치 압박하듯이 함께 가고 있는 거대한 목재를 실은 트럭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는 어쩌면 더 큰 시련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희생자이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일어나야만 하는 가해자로써의 이중성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꺼이 공범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행복해졌을까? 아니, 이런 물음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니, 이 전쟁 같은 세상에서. 말살된 인간성 앞에서 우리는 행복을 논할 수 있는가?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만의 이기적인 행복이 아닌가. 그것도 거짓과 피로 점철된. 우리들은 이미 우리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환자들이 아닌가.
 
연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영화에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나오는데, 그중에서 이병헌은 물론이거니와 최선출 역의 박희순과 구범모 역의 이성민의 연기는 가히 눈부셨다. 엄혜란의 연기는 연극적이랄까, 약간 인위적이고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그의 극 중 역할이 오디션장을 다니는 배우(혹은 지망생?)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미장센은 뭐랄까, 굉장히 한국적인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 이질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레트로한 느낌도 나는데 그것이 마냥 한국적이지만은 않은... 암튼 박찬욱만의 미장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이전에 본 《스토커》에서 확실히 느낀 것인데) 화면의 전환이 비슷한 장면으로 이어질 때다. 그러니까 어떤 한 장면에서 인물 혹은 사물의 실루엣이, 이어지는 장면에서의 파도나 어떤 무늬 등으로 전환되는 것이다.(그것은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물론 그것이 박찬욱 감독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 우리가 치뤄야 하는 댓가는 무엇일까? 여러모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봄날은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카루가 죽은 여름  (0) 2025.12.01
프랑켄슈타인  (0) 2025.11.22
올드 가드  (0) 2025.08.17
슈퍼맨(2025)  (0) 2025.07.13
씨너스: 죄인들  (0)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