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올드 가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말인데 영화라도 한 편 볼까 하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올드 가드2》가 새롭게 올라와 있는 걸 보고, 그럼 올드 가드 1도 있겠네 싶어서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올라와 있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다(이 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올드 가드 2가 올라오기 전에는 1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때로 어떤 영화를 선택할 때는 그날의 날씨나, 기분, 상황 등 그러니까 되는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의 느낌에 따르게 된다. 오래전부터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넷플릭스에 찜해 놓은) 영화들은 언젠가 보겠지 하고 미루면서, 실제로 보게 되는 영화들은 그때그때 순간적인 느낌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내가 찜해 놓은 영화들은 점차 뒤로 밀려나고, 그리하여 결국 넷플릭스에서 사라지게 되고, 나는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그냥 아무 영화나 보게 된다. 그런 사이클이다. 참으로 얄궂은 심리라 아니할 수 없다.
어쨌거나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 《올드 가드》는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보았는데, 불사신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들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고, 아주 오랜 세월을 살며, 임무를 부여받거나 혹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누군가를 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비공식적인 수호자였다. 그들의 존재는 철저히 은폐되어 있는데, 이 비밀을 아는 요원에 의해 붙잡혀 제약회사의 마루타로 쓰일 위기에 처한다. 인류를 위해 헌신해 온 불멸자(사실 이 말은 맞지 않다. 그들이 불사신이긴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기를 알 수 없을 뿐)인 그들이, 필멸자인 인간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실험체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미치광이 제약회사의 CEO는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실험쥐처럼 고문한다. 그들이 불멸하는 이유가 말도 안 되는 치유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떻게 해서 그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어느 순간 그런 능력을 잃게 되는지도. 어떻게 보면 슈퍼 히어로물이라고 봐도 무방 할 텐데, 마블이나 디씨의 떠들썩하고 영웅적인 능력자들이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인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전 세계적인 관심도, 일반 사람들의 추앙도, 영광도 없다. 그저 그들이 맡은 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관심이나 추앙, 영광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긴 세월을 통과하여 인류를 위해 일을 한다. 그것은 형벌일까? 그들이 그런 능력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내려진 벗어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들이 견뎌야만 할 외로움과 고독의 무게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쓸쓸함. 이 영화는 참으로 쓸쓸한 영화가 아닌가. 영광도 없고, 인정도 없고, 환호와 공감도 없는. 그 쓸쓸한 세계 속에 남겨진 그들. 오랜 세월을 살수록 쓸쓸함과도 친구가 되는 것인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쓸쓸함과 허무 속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종류와 느낌은 좀 다를지 몰라도, 불멸자나 필멸자나 모두 쓸쓸한 세상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말이다.
《올드 가드 2》를 봐야 할까? 글쎄, 그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1편을 재밌게 본 것과는 별개로 2편을 보게 될지는. 그것은 내가 언젠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틀고,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 알게되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