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시월의숲 2025. 11. 4. 22:34

 

 

이 책이 2018년에 나왔으니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다. 그동안 이 책은 내 책장에 고이 꽂혀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읽기 시작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다 읽게 되는 게 책이라서(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다) 이 책도 역시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빨리 읽혔다. 그동안 내 책장에 꽂혀 있던 세월은 다 무엇이었나 싶을 정도로. 사실, 그런 책이 한 둘이 아니다. 내 방엔 아주 오래전에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다소 의아한 일은, 내가 하루키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비교적 오래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하루키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습성이 있으니 나는 이 책을 나오자마자 샀을 것이다. 이 책은 하루키의 소설도 아니요, 에세이도 아닌,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작가가 하루키를 인터뷰한 것을 모은 책이다.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크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와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에 대한 인터뷰집이라 할 수 있다. 그 책들을 매개로 하루키의 우물로 들어가기.

 

이 책은 물론 그냥 읽어도 하루키의 글솜씨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책을 읽은 사람에게 더 큰 재미가 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아주 오래전에 그 책들을 읽은 탓에,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의 내용을 가까스로 기억해 내거나 어떤 내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로 책을 읽어나갔다. 가까스로 기억이 날 때는, 아, 그랬지, 그런 내용이었어, 하고 무릎을 쳤고,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는 뭐, 그런 게 있었던가, 하고 넘겼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생각에, 하루키의 팬이라면 당연히 좋아할 책이지만, 하루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굳이 찾아보지 않을 책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전자이므로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인터뷰집이니까 기본적으로 서로의 대화를 기록해 놓은 것일 텐데, 책으로 나왔으니 날 것의 대화를 그대로 실었을 것 같지는 않고, 문장을 가다듬고 매만졌겠지만, 그럼에도 하루키는 분명 말을 잘하는 - 그가 직접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의 인터뷰만 봐도 그가 쓰는 에세이와 소설에서 풍기는 느낌이 전해지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새삼 느꼈다. 그는 문장과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는 걸. 어떤 면에서는 좀 재수 없어 보이긴 하지만(특히 그의 소설가적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을 보면), 그조차 그가 구사하는 문장과 이야기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걸,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납득하게 된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하루에도 몇 십장씩 꾸준히 소설을 쓰고, 마라톤을 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는 말한다.

 

어찌 됐건 살아있는 동안은 충실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게 지금 생각이에요. 제 경우에는 소설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는 것이 그 방법이고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이상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아도, 그동안만큼은요.

 

"자신이 죽은 뒤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셈인데, 그런 쪽으로 상상해 볼 때는 없으세요? 죽은 뒤에 생길 일들요." 가와카미 미에코의 이 질문에 하루키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 선반 가득한 레코드는 다 어떻게 될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