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삶은 아름답고 덧없었으며, 젊음은 아름답고 빠르게 시들어갔다

시월의숲 2025. 11. 29. 00:31

 

 

이십 년 뒤, 골드문트 자신은 어떻게 될까? 아, 모든 것이 불가해하구나,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슬픈 것이로구나.(103쪽,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책, 2018.)

 

 

이십 년 전의 나는, 이십 년 뒤의 내가 어떻게 될지 당연히 알지 못했다.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나로 살아갈 테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했던 그때는, 이십 년 뒤 아니, 몇 전 뒤의 나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에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어야만(한다고 종용당)하고, 결국 무엇이든 될 수밖에 없지만, 무엇이 될지는 그것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으므로 그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테고. 아, 물론 자신의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가는 사람도 물론 존재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전자는 골드문트요, 후자는 나르치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과 경험, 예술의 화신인 골드문트와 이성과 지성, 영성의 화신인 나르치스의 이야기다. 내가 읽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 가장 깊이 빠져들며 읽었다. 아버지, 스승 같은 나르치스와, 세상을 유랑하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복무하는 탕자 골드문트의 이야기에 내가 왜 그토록 빠져들었을까?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사랑의 감정이 내게는 무척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말이 궁금했다. 자신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나르치스보다 온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유랑하는 저 탕아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깨닫게 될 것인가.

 

신에게 자신을 맡긴 나르치스의 삶은 이미 확고하다. 물론 그 삶에도 수많은 고뇌와 고통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은 확고부동한 신의 광휘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신에게서 벗어나 삶의 부조리함과 유한함을 몸소 느끼고자 하는 골드문트의 삶은 지극한 쾌락과 지극한 고통의 극단을 오간다. 그의 삶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멈춰 있는 삶은 자신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시시각각 느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헤세는 인간의 유한성, 즉 필멸자라는 인간의 숙명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본능에 충실한 삶은 무엇을 남기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골드문트는 오랜 유랑 생활 속에서 감정에 충실한 삶 외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을 텐데, 그렇다면 인간의 삶이란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짧은 인생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에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일이 아닌가, 하고. 그리하여 골드문트는 자신 안에 내재된 예술적 재능을 깨닫고 그것을 갈고닦아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새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조차 영혼을 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신에게로의 회귀 말고는 다른 답은 없는 것인가?

 

 

삶은 아름다웠다. 행복은 아름답고 덧없었으며, 젊음은 아름답고 빠르게 시들어갔다.(294쪽)

 

그래, 그날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슬펐는지, 그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 슬픔은 지나가고 고통과 절망도 기쁨과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감정은 지나가고 흐릿하게 사라졌다. 깊이와 가치를 잃어가다가, 마침내 어느 날 한때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왔다. 심지어 고통조차도 늙고 시들어버리는구나.(329쪽)

 

 

그는 깨닫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기꺼이 죽는다. 죽음을 받아들인다. 시시각각 그를 사로잡았던 것들, 지금은 결코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그는 사랑했다. 그는 매 순간에 존재했고, 그것을 느꼈고, 그것에 충실했으며, 그것을 살아내었다.

 

 

"그런데 나르치스, 당신은 어머니도 없이 어떻게 죽으려고 하나요?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죠. 어머니 없이는 죽지도 못하는 거잖아요."(441쪽)

 

 

'골드문트 최후의 말은 나르치스의 가슴속에서 불이 되어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