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시월의숲 2025. 9. 22. 23:34

 

 

읽는 내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주인공인 펄롱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과 그 삶을 둘러싼 아일랜드의 겨울 풍경을 무심한 듯 묘사하고 있지만, 수녀원을 방문한 펄롱이 우연히 한 아이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 느낌은 예감이 되고, 예감은 점차 확신이 된다. 하지만 펄롱의 내면에는 드라마틱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계속 추운 겨울 아일랜드를 견디며, 석탄을 배달하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결코 풍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둔 가장으로서의 삶.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 그는, 배달을 하며 마을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과거의 삶과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살지만 그것조차 그를 억압하거나 옥죄일 정도의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그는 신실한, 보통의 상식적인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결단하게 한다. 수녀원에서 만난 아이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쪽)

 

그것은 인간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다가올 일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곤란하며, 자신의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이 뒤흔들릴만한 고통이 따를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는 지극히 양심적인, 그로써는 당연한,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지 못한 채.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짧은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이후의 그에게 어떤 곤경이 닥쳐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수녀원에서 데려온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수녀원의 비리와 타락이 어떻게 밝혀지는지도.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이 분명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임을. 그처럼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거대한 담을 허물어뜨리는지를. 그러니까 거대한 불합리를 타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무언가일 수도 있음을.

 

짧지만 강렬하고도 여운이 긴 소설이었다. 한 개인적인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외부로, 사회로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담담하고도 응축된 언어로 보여준다. 인간의 내면과 사회라는 외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짐짓 아무렇지 않게 - 그렇지만 마땅히 - 외부로 뻗어나가는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나도 식상하고 호들갑스러워서 쓰기에 늘 망설여지지만 어쩔 수 없겠다. 이 소설은 어떤 눈부심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소설임에 틀림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