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가 나오긴 하지만, 호랑이에 대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호랑이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작가는 한때 우리나라에 번성했던 -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말살되었던 - 호랑이의 진정한 현현은 그 시절 억압에 맞섰던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호랑이의 꺾이지 않는 야수성, 독립성, 저항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까.
이 소설은 '옥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 수십 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 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자신도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성공과 실패, 영광과 좌절, 배신과 각성을 거듭한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용감한 이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헤쳐나가는 이들 모두가 가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참 이상하지. 이 야심찬 소설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란 것이 고작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니.
결국 사랑이라는 말일까.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조국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이 어찌 되었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흡인력 있게 잘 읽혔다.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다 읽고나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나라, 이 세계의 거대한 파도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야수들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지금도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용감한 이들은 존재하고 있으니. 이 땅의 야수들은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용감하게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빛나는 촛불로, 나부끼는 깃발로, 저 광장에 서 있던.
*
주변의 모든 곳에서 삶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아가는 중이었고, 그들의 삶 역시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모든 존재가 공기처럼 가볍게 서로에 가 닿으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지문을 남겼다.(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중에서)
'흔해빠진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연과 필연의 이중주 (0) | 2026.01.21 |
|---|---|
|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0) | 2026.01.11 |
| 삶은 아름답고 덧없었으며, 젊음은 아름답고 빠르게 시들어갔다 (0) | 2025.11.29 |
| 나는 마침내 풍경의 일부가 되었어 (0) | 2025.11.09 |
|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0) | 202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