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시월의숲 2026. 1. 11. 00:23

 

 

아글라야 페터라니라는 이름도 생소한 작가가 쓴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라는, 제목까지 생소한 책을 읽었다. 읽은 지 꽤 되었지만 쓸 말을 찾지 못하다가 이 책의 맨 처음 실려 있는 '이 책에 대하여'라는 글의 첫 문장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것이 이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임을. 이 문장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이 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유럽을 떠돌며 루마니아어에 이어 스페인어를 익혔지만 읽거나 쓰지 못하다가 스위스에 정착해 독일어를 스스로 읽고 쓰게 된 이가 쓴 첫 소설이다. 여러 언어를 알았지만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했던 이가 자신이 택한 언어로 처음 쓴 자전적 글은 우리가 한 언어를 가지고 있고 알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를 찾았는가?(9쪽)

 

이것은 소설이지만 언어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것이 곧 거대한 서사가 되어 흐르지는 않는다. 소설 속 이야기는 툭툭 끊어지는 필름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또 생략되어 있다. 퍼즐처럼 문장들을 섞어서 아무렇게나 배열해 놓은 것처럼. 얼핏 한 편의 긴 시 같기도 하다. 문장 속 단어의 조합이 우리의 익숙함을 벗어난다. 하지만 에두아르 르베의 소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주인공은 계속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한 유목생활(서커스단에 있으면서 여러 나라를 다녔으므로)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언어를 안다는 건 어떤 상태가 되는 걸까.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결코 알지 못하리라.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 루마니아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마침내 독일어까지. 언어는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마침내 읽고 쓰게 된 독일어로 작가는 첫 소설을 쓴다. 그것은 응당 자신의 이야기여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소설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나, 나는 내 이런 생각에 확신이 든다. 

 

이 소설에는 갑자기 삶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인간이 느끼는 불합리와 낯섦, 그 난감함과 이해할 수 없는 가난, 상실,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치지 못하는 가족들을 향한 사랑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절제되어 있고, 무척이나 낯설다. 그리고 그 생경함 속에는 특유의 슬픔이 출렁이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루마니아어와 스페인어를 익혔지만 읽고 쓰지 못하다가 스위스에서 독일어를 읽고 쓰게 되는 과정에서 느꼈을 생경함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언니는 말해 주지 않으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폴렌타 속에서 끓는 이유를 이미 안다. 

아이는 무서워서 옥수수 자루에 숨어 있었다. 그 상태로 잠이 든다. 할머니가 와서 자루의 옥수수를 뜨거운 물속에 넣는다. 아이에게 줄 폴렌타를 만들려고. 그런 후 아이가 깨어났을 때 아이는 이미 푹 익어 버렸다.(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