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3

보통의 삶

동생네 가족이 대구로 이사를 했다 하여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다. 대구는 내게 서울과 다름없이 큰 도시다(서울 사람들은 대구를 그저 지방, 혹은 시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구와 차량, 건물 등 모든 것들의 밀도가 적은 지역(소위 시골)에 살고 있는 내게 대구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도시인 것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가게 되는 도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건 대구라는 도시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저 대도시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늘 생수를 찾는다. 마치 생명수라도 되는 것처럼. 동생은 그런 대도시의 아주 번화한 곳에, 그러니까 주상복합 건물의 22층에 살고 있었다. 건물은 무척 컸고, 병원이 제법 여러 개 입주..

어느푸른저녁 2025.04.13

버닝

"종수씨는 무슨 소설을 쓰세요? 이런 거 물어도 되나?" "저는 아직까지 무슨 소설을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왜요?"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 이창동 감독, 《버닝》중에서   *종수(유아인)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는 알바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종수는 해미로부터 자신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벤(스티븐 연)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해 주며 몇 차례 술자리를 함께 한다. 벤의 번드르르한 집과 종수의 낡은 집에서. 술자리에서 종수는 벤의 은밀한 취미를 듣게 된다. 그는 두 달에 한 번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골라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

봄날은간다 2025.04.08

단상들

*길을 걷다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까치의 배를 보았다. 이제 춥다는 말은 유통기한이 지난 말처럼 느껴진다.(20250313)  * 오래전에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제목 앞에 연도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분명 2025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2020년이었다. 그러니까 그 만화의 제목은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였던 것이다. 뭔가 크게 예상을 벗어난,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20250315)  * 직장 동료의 문상을 하러 가서 나는 무슨 말을 그리도 지껄였을까. 영정사진 앞에서, 향은 불이 잘 붙지 않아 당황스러웠고, 급격히 떨리는 손으로 겨우 불을 붙인 향이 향로에 잘 꽂히지 않아서 더욱 당황스러웠던. 나는 그곳에서 오래 준비한 죽음과 갑작스러운 ..

입속의검은잎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