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976

치마를 입은 이상(李箱)

시인 이상이 치마를 입고 찍은 졸업사진을 본 적 있는가. 나는 그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 단순한 코스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건 그가 택한 전복이 마음에 든다. 사진 속의 진지한 표정도,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성정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한국 문학사상 가장 현대적인 시인이었던 그가 이러한 차림으로 흑백사진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김선오, 중에서)  *그래서 찾아보았다. 맨 앞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시인 이상이다. 정말 그는 꽤 진지한 표정이다. 김선오 시인의 말처럼, 나 역시 이 사진을, 치마를 입은 이상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어느푸른저녁 2024.07.24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 나는 그때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의 그 말에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아직 다녀오지 않았고, 다녀올 계획도 없었기에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때 내가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가족들이 언제 시간이 되는가,였다. 그러니까 나는 휴가라는 것을 늘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내 머뭇거림을 알았는지, 미용실 원장 선생님은 뒤이어 말했다. "가족들과 보내는 휴가 말고 자신만을 위한 휴가 말이에요." 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내 멍한 기분이 들었다. 휴가라는 것이 가족들하고만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 나만의 휴가...' 나는 한동..

어느푸른저녁 2024.07.15

돌이킬 수 없는 예감

열일곱 살의 나를 떠올린다. 더 멋진 반항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구립 도서관에 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서가를 돌아다니다 당시 유행하던 젊은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우연히 꺼내 든다. 수록된 첫 번째 시를 읽는다. 전율한다. 두 번째 시를 읽는다. 다시 전율한다. 도서관의 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 무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 그 순간 나는 다른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전율의 기억을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 펜을 들고 시인지 뭔지 그 비슷한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볼 것이라는 예감, 언젠가 나의 시집 역시 이 도서관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으리라는 예감, 그러니까 ······ ..

어느푸른저녁 2024.07.13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에 누군가 한 시 혹은 한 시 반까지 오라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두 시까지 와도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또 다른 누군가가 한 시에 보자고 했다. 내게 시간을 말한 사람들은 모두 한 팀에 속해 있었다. 나는 처음에 들은 대로 한 시까지 약속한 장소에 갔다. 그랬더니 다들 내게 말한다.   "아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나는 그 소리가 이렇게 들렸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느푸른저녁 2024.07.05

미지를 위한 루바토

어제가 지금까지 근무하던 곳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무려 세 번의 송별 모임을 했고, 새로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잦은 술자리로 인해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업무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헌데 이상하지, 오래 있었던 곳을 떠나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담한 기분이 든다.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석별의 멜랑콜리한 감정보다 더 세다는 말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조차 어떤 걸 느껴야 할지 잊어버린 걸까? 그냥 멍한 상태로 저번 주, 아니 이번 달이 흘러갔다. 그리하여 결국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은 도래했고, 7월이라는 미지의 - 지금까지는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아주 새로울 - 시간을 코 앞에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느푸른저녁 2024.06.29

누가누가 더 잔인한가

"넌 남이잖아!" 아버지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혈육의 아픔을 마치 남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일 터였다. 정말 남이었으면 어땠을까?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이었으면? 하지만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그것만큼 소용없는 생각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 질문의 잔인함에 뒤늦은 경악이 들었는데, 그조차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잔인한 건 아버지인지 나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가족이란 어쩌면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불행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저주를 타고난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이 저주인 이유는 상처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신기할 정도의 치유제 또한 부여했다는 데 있다. 영원한 형벌을..

어느푸른저녁 202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