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그것은 진정 사랑이었다 - 브로크백 마운틴

시월의숲 2006. 3. 6. 17:18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슴 속에서 울컥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올라가는 동안 나는 눈을 감은채 꼼짝하지 않고 앞서 느꼈던 감정을 되새기며 그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 그것은 끝내 이루지지 못한, 혹은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으며, 슬픔이었고, 진정한 사랑 한 번 못해본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에서 양치는 일을 하게된 무뚝뚝한 에니스(히스 레저)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잭(제이크 길렌할)은 처음 보기에도 너무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나이 또래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힘겨운(돈을 벌어야하는) 삶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의식 저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은 어쩔수 없는 본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과 떨어진 깊은 산 속에 단 둘이 있게 되었고, 식량은 떨어졌으며, 추운 밤엔 좁은 텐트 안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으니 서로 가까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밖에.

 

혹자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동성애자(이 말은 다수의 횡포요, 이유없이 편을 가르는 것 같아 싫지만 '다름'을 나타내기 위해...ㅠㅠ)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성애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것(그들의 입장에서 보면)이며 그것은 이성애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능처럼.

 

사실 이 영화에서 동성애라는 소재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그리 민감할 필요도 없다.(아마 이안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동성애를 전면에 그리고 있긴 하지만 영화는 그것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절실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되어질)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환상 말이다. 우리는 그 환상이란 신기루 같은 것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손을 뻗지 않는가. 그런면에서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어쩔수 없는 본능일지 모른다. 혹은 환멸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 그런 인간이 가진 숙명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잭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1년에 한 두 번의 만남에 만족하는 에니스. 20년간 그런 삶을 유지하다가 결국 죽게 되는 잭. 잭이 죽은 뒤 그들의 브로크백에서의 만남과 이야기와 추억들이 모두 사랑이었음을 알게되는 에니스. 사랑이란 아마도 그것이 비극적일 때에만 진가를 발휘하는 듯하다. 채우지 못하는 사랑,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 되어버리는 사랑은 그 자체로도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가.

 

영화의 마지막, 에니스가 옷장에 걸린 자신과 잭의 옷을 바라보며 한 말이 생각난다. "I swear..." 그것은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영화는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20년이란 긴 세월을 통과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모든 것이 그 한마디와 에니스의 눈물에 들어있는 것인지도. 

 

동성애냐 이성애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 '사느냐, 죽느냐'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사랑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