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폭력에의 매혹(영화, <떼시스>를 보고)

시월의숲 2006. 5. 29. 20:53

<오픈 유어 아이즈><디 아더스>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데뷔작인 <떼시스>를 보았다. 듀나의 칼럼을 보다가 알게 된 영화인데 <오픈 유어 아이즈>를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듀나의 칼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스릴러라는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해서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보고 난 후의 느낌도 물론 좋았고.

 

대학 영화과에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미치는 폭력성에 관한 논문을 쓰는 앙겔라(아나 토렌트)는 우연히 스너프 필름(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찍은 것)을 보게 되고 폭력과 에로 영화의 광적인 수집가인 체마(펠레 마르테네즈)와 함께 그것을 추적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영화는 스릴러로서 범인이 누구일까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드는데, 이것은 듀나가 지적했듯이 스릴러의 두 가지 유형 즉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과,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중 후자에 속한다. 나는 물론 후자를 더 좋아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범인이 누구일까 생각하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내 구미에 정말 딱 맞는 영화였다. 주인공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조금 진부하지만)도 좋았고 끝에 밝혀지는 범인에 대한 반전도 꽤 괜찮았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폭력에의 매혹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화의 처음, 지하철 사고가 난 곳에 모인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머리가 없는 사람의 시체를 보기 위해 서서히 다가가는 주인공이라니! 누구보다 폭력을 싫어해서 그에 관한 논문까지 쓰려는 앙겔라가 결국 폭력에 서서히 매혹되어가는 모습은 비단 그녀 개인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살인사건 등의 현장에 모여든 사람들. 사람들은 거대한 폭력 앞에 얼굴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치다가도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그것을 본다. 어쩌면 교통사고나 살인사건 보다도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한 일은 그것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력은 결코 물리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폭력에의 매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든 극단적인 것에는 어떤 순수함이 있어 그것에 끌리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아니면 쾌락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원래부터 그런 본능이 있기 때문에? 혹은 그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기 때문에? , 모르겠다. 똑똑한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찾아보지 않기로 한다.(머리 아프잖아...ㅜㅠ)

 

어쨌거나 영화는 그러한 폭력에의 매혹에 대해, 매스 미디어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그러한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성찰이 그렇게까지 깊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것은 폭력에 관한 '떼시스(논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소재로 삼은 '떼시스라는 제목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요한 미덕(?) 중의 하나가 재미 아니던가! 아마 감독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폭력에 대해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보다 폭력에 매혹되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마치 내 임무는 여기까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이상의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폭력에 끌린다는 사실(그것이 본능이든 호기심이든 무엇이든)을 새삼 확인하는 것 같아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지만 그래서일까, 더 매혹적인 영화였다. , 그리고 <오픈 유어 아이즈>에 나왔던 남자 배우 두 명이 이 영화에 그대로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히 체마역을 맡은 배우는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펠라요역을 맡은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재밌게 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