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시월의숲 2006. 5. 9. 22:52

 참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그렇듯 딱히 주인공이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 정말 좋은 영화를 보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좋은 영화... 정말 모호하기 그지 없는 말이지만 '좋은 영화' 란 것이 있다면 딱 이 영화겠다, 싶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좀 간추려서 말해보자면 총 여섯 쌍의 커플들이 나온다. 낡은 극장 건물을 소유했지만 인색하고 나이많은 남자와 그 남자의 건물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 여자, 왕년에는 농구선수였다가 현재는 대부를 해주고 돈을 거둬들이는 회사의 직원으로 있는 남자와 자신이 그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아이, 댄스그룹에서 활동하다가 짤린 가수와 그를 좋아하는 수녀, 지하철이나 길에서 잡상일을 하고 있는 가난한 남자와 그의 부인, 무대뽀 형사와 신경정신과 의사, 마지막으로 연예기획사 사장과 그의 가정부....

 

일일이 나열하기가 숨이 찰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과 저마다의 삶, 그리고 사연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또 그들은 얼마나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모두들 저마다의 성에 갇혀 타인은 점점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현재 우리의 삶에서 이 영화가 보여준 인간관계는 우리의 마른 감성을 적셔주기에 충분했다.

 

내 삶은 내 것이라 생각하며 남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하는 개인주의자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에 일정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행위가 타인에게 폭력으로 혹은 따스함으로도 어떻게든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진실로 따스한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본능 때문인지도 모르고.

 

여러 사람들이 서로 알게 모르게 얽히면서 영화는 마치 자수를 놓듯 이들의 삶을 꼼꼼히, 차근차근 보여준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던건 아마도 감독의 능력 덕분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혀있는 데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각각의 커플들 또한 서로 걷돌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으니. 감독이 놓는 자수의 전체적인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는 삶의 불행도 결국 지나가는 것이며 극복되는 것이라 믿는 듯 했다. 그 믿음이 너무도 감동적이고 눈물겹게 그려져 있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가슴이 따스했다.

 

우리 모두는 불행을 하나 둘 쯤은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삶의 고비라는 것이 있다. 그 고비를 넘기게 하는 힘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사랑과 희망임을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니체의 말에서 눈을 뗄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런지.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