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중에서

시월의숲 2007. 8. 9. 20:20

...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의 길, 뜻밖의 만남,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년 시절에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 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기분을 언짢게 해드린 부모님(다른 사람이라면 기뻐했을 텐데), 심각하고 커다란 변화로 인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질병, 조용하고도 한적한 방에서 보낸 나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곳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소리 내며 모든 별들과 더불어 흩날려 간 여행의 밤들!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같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는 수많은 밤들, 진통하는 임산부의 외침, 가벼운 흰옷을 입고 잠을 자는 동안 자궁이 닫혀져 가는 임산부들에 대한 추억도 있어야 한다. 또 임종하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봐야 하고, 창문이 열리고 간헐적으로 외부의 소음이 들려오는 방에서 서제 옆에도 앉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이불 가장자리에 비어져 나와 있는 작은 털실 하나가 강철로 된 바늘처럼 딱딱하고 뾰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잠옷의 작은 단추가 내 머리보다 더 크지나 않을까, 크고 무겁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지금 침대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닿자 유리처럼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그렇게 되면 실제로 모든 것이 다 깨어져 영원히 돌이킬 나위 없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걱정, 뜯겨진 편지의 가느다란 가장자리가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닐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어서 방의 어느 곳에도 숨겨둘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내가 잠들면, 난로 앞에 있는 석탁 쪼가리를 잘못 삼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내 머릿속에서 어떤 숫자가 자라기 시작하여, 몸속에 있을 자리가 없어질 정도로 커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내가 누워 있는 침대가 화강암, 그것도 회색 화강암이 아닐까 하는 불안,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러 문앞에 사람들이 달려와 마침내 문을 부수고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내가 내 비밀을 털어놓지나 않을까 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모조리 말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모든 것이 말로써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 불안들…… 불안들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