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무라카미 하루키, 《어둠의 저편》중에서

시월의숲 2007. 7. 28. 16:36

  "뭔가를 진짜로 창조하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건데?"

  "글쎄…… 사람들에게 음악을 마음속 깊이 전달되게 해서, 내 몸도 물리적으로 얼마간 스스륵 이동하고, 그와 동시에, 듣는 사람의 몸도 물리적으로 스르륵 이동하게 하는 것. 그렇게 창작자와 감상하는 자 사이에 공유적인 상태를 낳게 하는 그런 게 아마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

 

  "시간을 가지고 , 자기의 세계 같은 것을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일부러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세계란 것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세계에 불과하잖아요. 골판지 상자로 만든 집처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 ."

 

*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잇조각일 뿐이지. 불이 '오, 이건 칸트로군'이라든가, '이건 요미우리신문의 석간이군'이라든가, 또는 '야, 이 여자 젖통 하나 멋있네'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고 있는 건 아니잖아. 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것이든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야. 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

 

 

- 무라카미 하루키, 《어둠의 저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