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무라카미 류, 《공생충》중에서

시월의숲 2007. 9. 30. 12:43

내 기억에 따르면, 멸종이 프로그램된 종은 공생충의 종숙주가 된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야말로 공생충이라는 이름의 근거이기도 하다. 어떤 종, 속이 스스로 멸종을 프로그램한다는 것은 생태계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룡의 멸종은 다음 환경을 위하여, 즉 다음 시대의 전 생물의 공생을 위하여 불가결한 일이었다. 공생충은 스스로 멸종을 프로그램한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몸 속에 공생충을 기르고 있는 선택된 인간은 신에게서 살인과 살육과 자살의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71쪽)

 

 

공원 사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양한 색의 시트를 풀밭 위에 펼쳐 두었다. 녹색 피부 위의 빨갛고 파란 뾰루지 같다고 우에하라는 생각했다.(149쪽)

 

 

불필요한 접촉을 피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 우에하라는 생각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은 불필요한 인간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방에 틀어박혀 사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그 밖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일련의 흐름이었다. 잡목림 속의 저 작은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과도 같다. 진실은 늘 가느다란 골짜기를 조용히 흐르고 그 흐름을 멈추지 않지만, 그 흐름을 발견하기는 무척 힘들다. 명확한 목적을 가진 사람만이 우연히 그 흐름과 만난다. 한번 그 흐름 같은 것을 파악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결코 방향을 잃는 법이 없었다.(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