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비오는 날

시월의숲 2008. 3. 29. 14:53

비가 오고, 그래서

하늘은 내 머리 위에서 잔뜩 흐리고

조금이라도 파인 땅바닥은 온통 빗물을 가득 머금고

곡예하듯 이리저리 웅덩이를 피해 발을 디디다 보면

내가 마치 토끼가 된 것 같아 우스워, 그래서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바지는 흙탕물로 젖어버리고

내 기분도 따라 얼룩져버린다

괜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짜증섞인 눈길로 한껏 흘겨보고.

 

약속이 없어 집으로 들어온 나는

흙탕물이 튄 바지를 벗어내던지며

방안 컴퓨터 앞에 동그마니 앉아

무엇이든 써봐야 하지 않겠냐는 강박에

더 심란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비는 오는데,

자꾸만 건조해지는 이 기분

자꾸만 딱딱해지는 이 기분

이렇게

횡설수설만 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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