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몽롱함의 기억

시월의숲 2008. 4. 2. 22:14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일까?

 

술을 마셔셔 취기가 오르면

기분이 좋아지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괜히 흥분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듯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무런 의미없는 이야기일뿐

취기가 가시고 나면

남는 것은 허탈함과 숙취, 약간의 민망함만이

노상방뇨의 흔적처럼 남아 지린내를 풍기고

그 전날, 알 수 없던 흥겨움은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또 술

 

하지만

민망함과 어색함, 허탈함만이 남는다면

어찌 또 술을 마실 수 있을까

그 모든 혼란들은 고통 속에 왁자지껄 잊혀지고

또다시 흥겨움의 기억이

그 짧은 몽롱함의 기억이

마약처럼 새록새록 머릿속에 번지면

우리는 또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나는 이런 낙서를 한 것을 입술을 깨물며 후회하겠지

후회하겠지

속쓰림과 쾌락의 악순환

 

술을 마셔서 가까워지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술 그 자체인 것을

 

아, 나약하고 슬픈,

인간이란 이름의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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