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채영주, 『목마들의 언덕』, 문학동네, 2003.

시월의숲 2008. 7. 12. 19:28

고아에 관한 이야기라고 짐작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아이들의 방황을 다루었거나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자들의 격렬한 몸부림을 그려내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채영주의 <목마들의 언덕>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서정성과 함께 어떤 부드러운 목소리, 혹은 따스한 오월의 햇살 같은 기운을 함께 품고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아들을 필요이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이야기는 자칫 진부해지고 신파조로 흘렀을 것이다. 그는 고아가 된 아이들이 지닌 개개의 사연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고아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보다 주목한다. 모두가 고아들인 공간에서 누구하나 절망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비극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그렇다고 작가가 마냥 그들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무덤덤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들 중 몇 명이 고아가 된 사연을 80년대 광주와 연관지어 드러내보이면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고아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그가 정치학을 공부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닮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따스한 동화에 가깝다.

 

등허리에 굵은 철심이 박혀 아무리 회전해도 벗어날 수 없는 회전목마의 운명. 그것은 비단 고아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고아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잠정적 고아가 아니던가. 중요한 것은 회전목마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부모가 있으면서도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읽고 난 후 따스한 커피 한 잔이 몹시도 간절해졌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면서 한 잔을 다 마셨다. 책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뜨거운 것을 마시는데도 전혀 덥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약간의 위안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것은 위안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따스하면서도 가슴한켠이 아련히 아파오는,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