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파스칼 브뤼크네르, 『아름다움을 훔치다』, 문학동네, 2001.

시월의숲 2008. 7. 23. 23:36

'파스칼 브뤼크네르'라는 생소한 이름의 프랑스 작가가 쓴 <아름다움을 훔치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처음 이 소설의 존재를 강정의 <나쁜 취향>이라는 산문집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의 글솜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이끌림에서였는지, 그때 이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이 소설 혹은 이 소설가에 대해 어떤 말들을 늘어놓았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강렬한 이끌림이 나를 이 소설과 만나게 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우리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들에 자연스레 이끌리듯, 아름다움을 훔친다는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렸던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제목,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뱅자맹 톨롱이라는 천재적인 표절작가와 그를 애완견처럼 기르는 그의 애인 엘렌은 어느 겨울날 쥐라지방에 스키를 타러 갔다가 길을 잘못들어 눈속에 갇히게 된다. 그들을 구해주러 온 사람은 근처 산장에 살고 있는 난장이 하인 레몽이다. 레몽은 그들을 자신과 주인내외가 살고 있는 외딴 산장으로 안내한다. 주인인 슈타이너와 프란체스카는 그들을 재워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친절 속에 무언가 경멸하는 듯한, 알 수 없는 증오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뒷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보다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산장의 삼인방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만의 신념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그들이 잘라버려야 할 악, 증오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즉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움에 모욕을 당하고 있고, 아름다움을 지닌 이들에게 자신들이 당한 모욕을 갚아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젊고 아름다운 이들을 납치하여 감금한채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린다.

 

너무도 위험하고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그들의 발상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터무니없는 그들의 행위에 내가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뱅자맹을 설득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 논법 그대로 나 자신도 설득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뚤어진 신념임에 틀림없지만 또한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젊음이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가지고 싶어하고 훔치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이 실제로 이 소설에서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소설이 아닌가!

 

재미있었다. 미스테리하고 노골적이며 심각하다가도 때로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소설. 아름답다는 것은 어쩌면 일시적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훔치고 싶어지는 것일게다. 작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고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잔혹하게 해부하고 실험한다. 그것을 읽는 행위는 그 산장의 지하에 스스로 감금되는 일과도 같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삶이 제 수명을 다하는 그 순간, 죽음의 순간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