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8.

시월의숲 2008. 7. 6. 11:46

이 여름, 나는 한강의 소설을 집어든다. 얼핏 여름과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실은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빨아들인 식물들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 <채식주의자>를.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의 끈을 놓지않고 이어가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다른 세계를 보았거나 그곳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는, 기꺼이 그 경계를 훌쩍 넘고자 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몹시도 궁금했다. 아직 현실에 몸과 의식을 잡아두고 있는 내가 읽기에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불가해한 존재인 동시에 부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러한 모순적인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가? 나는 그 감정의 정체에 대해 생각한다.

 

육식의 거부. 그것은 영혜의 삶에서 평온했던(평온해 보였던) 시절에 마치 계시처럼 불쑥 찾아왔다. 바로 그녀의 꿈을 통해서. 피철갑을 한 얼굴로 날고기를 씹어먹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꿈은 그녀의 일상적인 삶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그녀 자신의 팔목을 긋는 지경에 이르게 했으며 결국 이혼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엉덩이에 찍힌 몽고반점에 호감을 느낀 그녀의 형부가 그녀의 온몸에 꽃그림을 그리게 되고 급기야는... 둘의 난행을 목격한 그녀의 언니는 결국 그 둘을 정신병원에 가둔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연작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결국은 장편소설인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의 강요로 대표되는 폭압적인 동물의 세계에서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즉 시원의 세계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자의 몸부림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육식을 거부하다 나중에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물과 햇볕만을 필요로하게 된 영혜는 결국 그녀가 원하는 나무 혹은 식물이 되었는가?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들이 현실에서는 그녀의 죽음에 다름 아니었을지라도 그녀는 그 죽음을 달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하고 쌍거풀 없는 눈매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을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가 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행은 정상인의 눈으로 보면 한갓 미친 짓에 지나지 않을 것이나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세계,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언젠가 우리가 비롯되었고 언젠가는 다시 비롯되어질 세계를 열망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는데.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온정신과 온몸을 다해.

 

읽는내내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또한 외부적 더위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망에 비하면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가슴이 서늘해져오는 느낌. 피가 빠져나간 후에 오는 현기증 같은 것.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너무나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