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창비, 2007.

시월의숲 2008. 9. 7. 16:43

오랜만에 윤대녕의 소설을 읽는다. 이번에 읽은 그의 소설은 여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재기발랄함이랄지, 유쾌함, 실험성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물 같은 잔잔함과 깊이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가족들과의 관계와 연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편소설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연대기는 무척이나 길어, 장편소설의 서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 편을 읽고 나면 여느 때보다 긴 호흡을 한 후에 다음 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때로 지루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그건 그의 소설이 삶의 진실에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내 애인과의 관계, 개개인이 가진 역사는 얼핏 일상적이고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윤대녕 특유의 성찰적인 문체와 아우라로 인해 그것은 특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결국 그의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그것을 깊이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들. 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연적인 만남 또한 이번 소설에서는 보다 내밀하고 응축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그리 엉뚱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문득 내가 조금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도 소설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성숙하다는 말과 늙었다는 말, 그리고 젊다는 말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간격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그 간격을 지나서 지금에 이른 것일까. 읽고나서 소설 개개의 줄거리가 기억나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도 앞서 들었던 생각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흘러, 흘러가는 것이겠지. 그게 삶이든, 그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