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을을 기다리다

시월의숲 2008. 8. 17. 14:07

아직, 너무 성급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는 가을의 기운이 느껴졌다. 집에서 반바지 밖에 가져오지 않는 나는 얇은 이불을 덮고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모든 문을 닫고 잠을 잤다. 자면서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당기기를 반복했으며 일어나서는 찬물에 머리를 감는 것이 불과 어제보다 약간 힘들어졌음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충분히 찬물에 머리를 감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약간의 힘듦은 말그대로 물이 아주 조금 차가워졌다는 뜻이지만 그것이 불과 하루 전인 어제와 달라졌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이것이 여름날씨의 예사로운 변덕일지 아니면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일지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직은 8월인 것이다.

 

그래도 가을을 기다린다. 아니,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계절이므로 약간의 설렘을 담아 가을이 기다려진다, 라고 말해야겠다. 물론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공기중의 후텁지근한 습기가 줄어들고, 모기떼의 극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낙엽이 밟히면서 내는 기분좋은 바스락거림을 들을 수 있고, 뜨거운 커피가 부담스럽지 않으며 음악소리가 더욱 명징하게 들리는 가을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나 가을을 기다릴 것이고, 가을이 기다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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