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바보상자

시월의숲 2008. 8. 16. 09:52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그 와중에도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전쟁을 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있다. 한쪽에서는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 열리고 또 한쪽에서는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지구요, 인간들임을 새삼 절감한다.

 

새로 이사를 오고 얼마 안되어 텔레비전을 산 나도 요즘엔 종일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광복절인 어제는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갑자기 멍해지고 머리 속이 텅 비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급기야는 두통까지 일었다. 그것이 텔레비전 때문인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쾌한 경험임에는 틀림없었다.

 

평소에 운동경기라고는 관심도 없고 거의 찾아보지도 않던 내가 올림픽에 이렇듯 열광하는 이유가 무언인지 나 조차도 의아하다. 나한테 나도 모르는 애국심이 그렇듯 많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에 무관심하던 내가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자신의 독재를 무마하고 관심을 딴데로 돌리기 위해 펼쳤던 일련의 스포츠 정책들이 생각난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라고 말하고, 각본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의 순수성 그 이면에 그러한 불순한 동기가 있었음을 떠올리는 일은 분명 슬픈 일이다. 더욱 슬픈 건, 그 당시 80년대와 지금의 사정이 겹쳐보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올림픽은 오래 전부터 약속되어 왔던 것이고 지금 우리의 사정은 예상치 못한 것이기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니까 결론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는 스포츠고 정치는 정치라는 이야기다. 그 어떤 것이든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지는 것들은 개운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금메달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너무 열광하지도 말고 그냥 즐기는 것. 그런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보상자를 너무 많이 들여다보면 바보가 된다는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를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나부터도. 아, 이것도 정치적인 생각인가?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 이라는 말  (0) 2008.08.23
가을을 기다리다  (0) 2008.08.17
울진  (0) 2008.08.13
사라지다  (0) 2008.08.12
때로는  (0) 2008.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