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사라지다

시월의숲 2008. 8. 12. 17:01

나를 감싸고 있던, 그리하여 나와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보이지 않는 끈이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예감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막상 닥치고보니 그러한 예감은 이 허허로운 심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타깝고 서운한 느낌이 습기처럼 나를 잠식한다. 이것은 슬픔인가?

 

때로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영원한 진리 앞에 우리는 매번 무릎을 꿇어야 한다. 얼마나 더 무릎을 꿇어야 그 안타까움이 덜해질까. 이런 기분은 혈육을 잃었을 때의 기분과도 비슷하다. 격렬함은 덜하지만 뒤로 잦아드는 슬픔은 더욱 긴 뒷맛을 남긴다. 매번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리라.그도 사라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새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르겠다. 정말 모를 일이다. 너무도 갑작스레 다가온 사라짐. 그것을 진정 존재의 사라짐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그 사라짐으로 인해 이렇듯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늘 그랬듯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것에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불볕 더위와 내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나는 익숙해져야만 한다. 삶이란 떠나오고 떠나가는 것임을 나는 다시한번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소리 소문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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