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울진

시월의숲 2008. 8. 13. 17:25

울진으로 이사를 온지 거의 이주일이 다 되었다. 물론 일 때문이다. 대학교 때 몇 달간 자취를 해본 것을 제외한다면 이십구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진정 홀로 살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있던 예천과는 3시간이 넘게 걸리는 바로 이 울진에서.

 

먼저 울진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과연 울진은 어떤 곳일까 내심 궁금했었다. 나는 어딜 가든지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울진을 갔다거나 가려는 사람들의 투덜거림과 한숨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도착해서 며칠 생활해 본 결과 다른 지역과의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과 극장이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최악의 기분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두가지 점에 있어서도 그렇게 불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굳이 집에 자주 갈 필요가 없고, 극장이 곁에 있었던 때도 나는 극장을 그리 자주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차로 울진의 여러 곳을 드라이브하면서 구경한 결과 나는 오히려 이곳에 약간의 매력을 느꼈다. 망양정 해수욕장을 끼고 도는 해변의 한적함과 고요함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입간판이 없다면 들어가보지도 않을, 거기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할 곳에 조그맣게 모여있는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고포마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조그만한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강원도 삼척이고 오른쪽은 경상북도 울진인 것이다! 그곳을 통과해 삼척쪽으로 난 해변도로를 달리며 본 바다도 멋졌다.

 

내가 울진에서 느낀 이런 매력은 아마도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어떤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약간은 위태로운 바닷가 마을. 등대와 방파제가 있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곳. 나는 이곳에서  온몸으로 해풍을 맞고 눈이 짓무르도록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몇 개의 계절을 나야 하리라. 운이 좋으면 나는 이곳에서 몇 편의 소설을 쓸 수도 있으리라. 늘 그랬듯이 책과 음악과 이런 끄적임이 나를 또 살게 할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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