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독, 이라는 말

시월의숲 2008. 8. 23. 14:21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간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실제로 시간이 빨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느낀다는 것뿐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나이에 정비례해서 속도가 빨라지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해서 벌써 2008년 8월의 말미에 다다랐다.

 

출판년도가 99년이니까 아마 그즈음 산 책이지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다시 읽고 있다.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그건 아마도 그동안 내 지식의 양이 늘었다기보다는(하루키 책에는 그런 것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을 때 내가 처한 상황, 처지, 생각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이 내 피부에 좀 더 다가오는 것은 내가 그때보다 좀 더 고독하기 때문일까?

 

고독, 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고독이라고 말하고 나자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진다. 그런 단어를 서슴없이 말하는 자를 나는 얼마나 비웃었던가. 설익은 감상, 겉핥기식의 너저분한 감상에서 나온 말이라고. 그런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거라고, 속으로 속으로 얼마나 부르짖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지금의 내 심정을 표현하는데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으므로, 언어에 의해 일희일비하고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 경박과 얇팍함과는 다른 순수한 가벼움, 깃털같은 그 가벼움이 되고 싶기 때문에?

 

넘쳐나는 사랑의 언어들은 그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얼마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결별소식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사랑이 식으면 그 사랑을 장식했던 언어들도 같이 식어버린다. 차갑고 딱딱하게. 그리하여 결국엔 모두 고독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고독이라는 단어에마저 초연해졌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들이다. 고독하게 태어나서,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죽는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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