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백만년만에(언제부터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일까?)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고모와 사촌들과 함께, 춘천에서 말이다. 나이가 비교적 어린 사촌들과 함께 봐야하는 영화를 고르다보니 이 영화를 고른 것이었지만 보고나서는 정말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봤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사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고모는 보고나서 한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며 행복해 했다.
게이가 등장하는 영화이니 호모포비아들이 봤다면(그들은 보지도 않고 불평을 해댈테지만) 기겁을 했을 영화이지만 자유롭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 봤다면 무척이나 따스함을 느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욕을 무척이나 자극하는 달콤한 케이크들의 향연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영화랄까. 영화는 앤티크에 모이게 된 네 명의 남자들이 가진 아픔을 어둡고 절망적이 아닌, 케이크처럼 달콤하고 초콜릿처럼 쌉싸름하게 그려보인다. 오래 전에 읽었던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에 나오는, 죽은 자식의 생일날 배달된 케이크를 맛보는 부모들처럼, 달콤하고도 짧은 위로같달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만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서로 겹쳐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려보인다. 그들은 대체로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감독은 그러한 타인에게서 비롯된 아픔과 상처를 증오나 복수로서가 아닌 따스함으로서 보듬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앤티크에 모인 네 남자들은 서로 미워하기는 커녕(진혁에게 사랑고백을 했다가 엄청난 모욕을 당한 선우는 후에 진혁을 만나서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간다. 앤티크의 주인인 진혁은 어렸을 적 상처와 호모포비아인 자신의 성향을, 선우는 여성혐오증을, 기범은 복싱에 대한 열망을, 수영은 매맞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관계란 정말 서로에게 그렇듯 긍정적인 관계여야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관계가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들이 적절히 웃음을 유발했고, 게이에 대한 편견없는 시선에서 나오는 유쾌함이 좋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상대방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결국엔 모두다 행복해진다는 설정이 좋았다. 진혁이 그렇게 찾아헤매던, 자신의 기억에 자물쇠를 채우게 만든 장본인을 잡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도 좋았고.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아픔과 절망과 슬픔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것일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스스로 저지른 잘못일 수도 있다. 진혁이 가진, 명쾌하게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고처럼. 감독은 아마도 그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케이크처럼 달콤하고, 보고나서는 행복해지는, 마법같은 영화였다. 아, 달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