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괴롭고, 즐겁고, 슬픈

시월의숲 2009. 1. 3. 10:15

독서를 하고 나서 무언가를 적는 일을 점차 소홀히 하고 있다. 아니, 이 말은 옳지 않다. 정확히 말해서 독서 자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말이 맞다. 그만큼 정신적인 여유없이 지낸다는 말일텐데 나는 그것이 슬프다. 독서에 정신을 쏟아야 할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내게 주어진 시간, 내가 혼자 보냈던 시간은 한 달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한 달 전, 또는 그 이전에 하던 독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 '엄청난'이란 수식어는 좀 과장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작해야 한 두 권이겠지만, 어쨌거나 피부로 느끼는 독서의 양은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연말이라 바빴던 탓도 있겠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내 게으름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감상문 같은 것은 쓸 수가 없었다. 슬픈 일이다. 내 게으름과 나약한 결심이.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고 독서를 해야겠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굳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길을 찾게끔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와 다른 생각, 내가 본 것과 다른 세계를 책에서는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자면 소설에 편중된 내 독서습관을 좀 바꿔야 할텐데 그게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철학류의 책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머리 아파하면서 이런 것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재밌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 책들이 넘치고 넘칠텐데. 하지만 소설만 가지고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데 부족함을 알고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소설만 읽으면 될까? 소설 속에 담겨 있는 것, 그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깊이있게 읽어내려면 소설만 읽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직접적인 경험과 관찰, 소설 이외의 책들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들... 그러한 것들이 어우러져야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한 외부적 경험과 지식들은 불명확하고 모순적인 인간관계의 여러 현상들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러한 부분들이 바로 소설적 상상력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아,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소설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소설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이다. 난 왜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

 

어쨌거나 독서! 독서를 해야한다.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정신을 채워주는 것은 역시 독서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독서를 전혀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유성용의 <여행생활자>를 읽고 있다. 책을 선택하는데에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심정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무척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저자처럼 여행이 생활이 되는 여행말고, 단순히 짧고 흥겨운 꿈같은 여행이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이 더 허락한다면 그때가 되어서야 저자처럼 구도자같은 여행, 티베트의 사막과 거대한 히말라야 같은 압도적인 자연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여행을 해도 좋으리라. 여행이 생활이 되는 여행, 그리하여 급기야는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는 여행말이다. 아,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안타깝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글을 읽는 일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글로써, 사진으로써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그리워하고, 저자가 말한 그곳에 직접 서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즐거운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에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는 것이겠지.

 

독서를 해야겠다는 말이 결국 독서감상문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나쁘진 않다. 책을 읽는다는 건 괴롭고, 그 괴로움이 즐거움도 되고 슬픔도 되는,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길 없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을테니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music for Egon Schiele  (0) 2009.01.08
혼자 있는 시간  (0) 2009.01.05
...뿐이고  (0) 2008.12.31
다행이다  (0) 2008.12.26
눈에 드리워진 숲의 그림자  (0) 200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