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숲 2009. 2. 13. 21:33

1.

대구에 출장을 다녀왔다.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이라는 곳에 가서 중소기업공공구매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거기서 나눠준 책은 무척이나 두꺼웠고, 틀어놓은 히터 때문에 강당 안은 나른한 공기가 감돌았고,  서울 본청에서 설명하려 온 사람의 음성은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잠이 절로 왔다. 그래도 그곳까지 고생하면서 간 내 성의를 생각해서 잠이 와도 꾹꾹 참으며, 반도 채 이해하지 못할 강의를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중소기업제품을 사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 중요한 건 그거다.

 

 

2.

오랜만에 간 대구는 여전히 삭막했고, 사람들은 쓸데없이 북적거렸으며, 공기는 탁했다. 나는 바짝 말라버린 가로수처럼 목이 무척이나 말라서, 슈퍼에서 산 물병을 수시로 홀짝이며 목을 축여야했다. 온통 회색건물로 빽빽한 대도시에 들어서면 나는 어쩐지 시들어버린 화초처럼 힘이 빠진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하고, 목이 마르는 것이다. 영락없는 촌놈이다. 차를 많이 타고 다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삭막한 그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3.

오늘은 비가 왔다. 화왕산에 불이 났을 때 이 비가 왔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앞일을 어찌 알겠는가.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무척이나 따듯했다. 비교적 두껍지 않게 입고 간 옷이 따뜻한 바람 때문에 덥게 느껴졌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오늘 밤엔 벼락까지 친단다. 희안한 날씨다. 그래도 춥다가 따뜻해지니까 기분은 좋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4.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다. 그러니 그것은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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