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I don't care!

시월의숲 2009. 2. 16. 15:47

남들이 쉬는 날 일을 하고, 일을 하는 날 쉬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불리한 듯 보이지만, 때로 그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해준다. 특히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늦잠을 자며 오후에 어슬렁어슬렁 은행에 갔다가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거의 오전 열두시에 일어나 대충 밥을 먹고 잠시 공적인 일을 보고 농협에 갔다가 시장에 들러 반찬을 사서 집으로 왔다. 날씨는 꽤 추웠는데 햇볕은 따사로워서 봄을 느끼게 했다. 집에서 혼자 밥을 해먹다 보니 반찬이 아쉬워서 시장에 갔는데 그곳에도 그리 신통한 반찬은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시골보다는 도시가 살기 더 좋을 것이라는(마트에는 여러가지 반찬이 많이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면서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채소가게 할머니에게 물어물어 반찬 파는 곳을 찾아갔는데, 고작 몇가지 반찬밖에 없고, 그것도 죄다 열무김치, 파래무침 같은 것 뿐이었다. 아쉬운데로 열무김치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왔는데, 먹어보니 맛은 꽤 있었다.

 

그렇게 혼자 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장 안은 썰렁함 그 자체였지만, 남들 출근하는 월요일에 한가하게 시장 구경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일요일에는 남들 다 노는데 나 혼자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좀 서글퍼지겠지만 말이다. 하긴, 나처럼 인간관계가 협소한 사람에게는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일할 때 일을 하고 쉴때 쉬지 못한다는 것에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의아한 눈길로 맞받아친다. 일요일에 일을 하건 말건, 월요일에 쉬건 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쉬는 일수만 똑같으면 억울할 것도 없다.

 

배수아가 찬미한 '고립의 아름다움'을 이제 조금 알것도 같다. 그리고 '이방인 놀이'의 참다운 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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