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하고 싶은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시월의숲 2009. 2. 27. 22:53

1.

술을 마시면 자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다. 다음 날 아침이면 분명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그런 이야기들을. 엄마와 동생,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내 가족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말해놓고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 내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나는 왜 내 가족사와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도 경솔하게 내 뱉는 것일까. 그것도 맨정신이 아닌 술만 마시면. 내가 들어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나면 나 스스로가 나를 좀 더 불쌍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인가?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불행을 비참하게 여겨주고 나를 동정해주기를 내심 바라기 때문에? 타인들 앞에서 나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진정으로 나도 나를 모르겠다. 정말 모를 일이다. 그건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아니, 해도 상관없지만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이다. 그것은 내 피해의식과 굴욕감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며 그리하여 끝내 내가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아, 풋내나는 내 정신이여.

 

 

2.

감명 깊게 읽었는데 막상 그것에 대한 느낌을 글로 쓰려고 하면 잘 안 되는 책이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장 그르니에의 <섬>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그렇다. 카뮈의 멋드러진 서문으로 시작하는 그르니에의 <섬>은 첫 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일상의 범상함을 결코 범상하지 않게 드러내는 그르니에의 글은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인 향취가 물씬 풍겼다. 결코 쉽게 읽을 수는 없어도(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아우라가 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 글의 균형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 아,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부조리한 세상에서의 부조리한 인간. 아, 이런 말은 얼마나 피상적인가. 그냥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말밖에는. <섬>과 <이방인>에 관해서는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머리맡에 놔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 자주 생각날 것 같은 책이다. <섬>의 몇몇 구절은 그대로 외워도 좋으리라.

 

 

3.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술을 마시고도 <섬>과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지만 이 혼탁한 세상 속에서 인간들은 너무나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오해투성이이며 가식적인 삶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고, 또한 그런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 속에 끼여서 몸 비비며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죽을만큼 슬프다. 어찌 해야 하는가. 그냥 이렇게 넋두리만 늘어놓고 있을 수 밖에 없는가? 아, 어쩌면 나는 이 말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섬'에서의 '이방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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