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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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숲 2009. 2. 23. 17:32

집에 다녀왔다. 격주마다 다녀오는 집이지만, 그래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귀향이었지만, 이번에 내려가서는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다 많은 일들을 겪고, 보다 많은 날씨를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나를 짓누르는 약간의 두통과 피곤함 때문일까. 삼일 내내 정신이 없이 지낸 것 같다. 우선은 날씨부터.

 

집에 내려간 토요일은 무척 맑은 날씨였지만 바람이 제법 차서 추웠는데, 친구들을 만난 일요일은 눈과 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리고 오늘, 집을 출발할 때는 맑고 포근한 날씨였으나 울진에 도착해서는 비가 오다가 그쳐서 무척이나 흐리고 추운 날씨였다. 햇빛과 눈과 비와 바람을 삼일동안 번갈아가며 맞으니 좀 지친다고 해야하나, 암튼 약간 피곤하다. 자취방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있으니 장을 보러 나가기가 싫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 보면 되겠지.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과 만나 솥뚜껑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결혼을 한 고향 친구를 만났다. 근무 때문에 결혼식에 못 가봐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부조금을 전했다. 그는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 부인을 데리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때 나는 이미 그의 차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내려달라는 말도 못하고 그냥 있었다. 속으로는 그의 부인을 한 번 보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그 친구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데, 이번에 필리핀 여자와 결혼을 했다. 처음 그가 필리핀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말을 했을 때 내심 놀랐지만 이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어떤 결혼을 하든 자신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그 여자는 키가 아담하고 귀염성 있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한국말에 서툰 그녀와 영어에 서툰 그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그들이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많은 난관들을 떠올리게 했지만,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잘 해나갈 테니까.

 

결혼한 친구를 만나서인지,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결혼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아, 모든 것이 내겐 아득하고 부질없는 짓으로만 느껴진다. 우중중한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뜨겁고 단 핫초코를 마셔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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