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봄이 오는 소리

시월의숲 2009. 3. 10. 14:45

아, 이제 정말 봄이 오는가 보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매화는 앞다투어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목련이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해 줄 줄 알았는데 매화는 그보다 훨씬 일찍 피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설렘을 심어준다. 매화 향기를 들이마시니 몸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도 겨울에서 봄으로 적응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까? 겨우내 잡고 있던 끈을 이제 놓아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봄을 맞이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내 몸이 이상하다. 양쪽 새끼손가락이 종이에 베이질 않나, 자고 일어났더나 혓바닥에 사방 2미리 정도의 살점이 떨어져나가있질 않나, 입가가 자꾸 갈라지질 않나... 물론 봄이 오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봄을 받아들이라는 몸의 신호인 것만 같다.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는 내 의식과 몸을 이제 봄 쪽으로 옮기라는 계절의 신호 말이다. 아, 봄은 여러가지 의미로 많이 아픈 계절이로구나.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목련은 피고, 개구리는 울어댈 것이다. 정영 그런 것이라면, 자연 앞에 내 모든 의식과 몸을 집중시켜서 최대한 그것들을 느끼고 싶다. 봄이 오는 소리, 만물이 깨어나는 저 부산한 소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만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또 있을까?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 거대한 흐름을 속에서, 그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숱한 죽음의 무덤 위에 피어난 한 그루의 매화나무처럼, 바람에 흩어져버릴 매화꽃잎과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날 초록빛의 잎파리처럼. 아무 시름없이, 나를 잊은 채로, 그렇게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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